위함에 대한 짧은 생각
"기분 나빠하지 마. 당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아내의 말에 긴장부터 하게 됩니다. 순간 머리를 굴립니다. 하려는 말이 정말 나를 위한 걸까? 아니면 자기의 못마땅한 마음을 표출하고 싶은 걸까? 살짝 혼란스럽죠. 오랜 경험에 따르면 이럴 때 아내가 하는 말은, 대체로 내용은 참 맞는데, 마냥 듣고 있으면 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아내가 짐짓 전달하고 싶은 것은 위함으로 포장된 못마땅함이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긴 설명보다 느낌적 느낌으로 아는 거죠. 저 또한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가끔씩 했던 말입니다. 대부분 제 기준에 맞지 않을 때 후배가 고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꺼냈던 머리말입니다.
물론, 이 말을 꺼낼 때 상대가 기분 나빠할 거라 예상은 합니다. 하지만 위한다는 마음이 있으니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냅니다. 그러다 된통 당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큰아들에게 진로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한참 듣고 있던 큰아들이 자리를 뜨며 한마디 툭 내뱉었습니다.
"왜 자꾸 저한테 아버지 입장을 강요하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내가 아무리 위한다는 마음으로 포장한다 한들 아들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입장으로 느끼는구나 싶었죠. 못마땅함도 있지만 아들을 위해서 그런 건데 뭐가 문제일까요? 도대체 뭐가 빠졌길래 위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못마땅함만 전해졌을까요?
우리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주면서 위한다 말합니다. 하지만, 상대도 동의할까요? 상대가 달라 말한 적이 있었나요? 혹시 상대는 원치 않는데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에둘러 들이미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아들은 냉철한 분석과 현실감 넘치는 충고가 아니라 아버지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했을 겁니다.
TV에서 많은 소통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강의에서 들려주는 분석과 통찰력이 놀랍습니다. 재치 넘치는 입담은 덤입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김창옥 강사는 예외입니다. 여느 강사들과 달리 그는 상대를 교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따뜻한 관심으로 상대를 살피다 제때에 필요한 반응을 합니다. 그 반응을 보노라면 저에게도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타인으로부터 느껴지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왜 필요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칼 융이 스승 프로이트로부터 정신분석을 받을 때입니다. 하루는 융이 분석을 받는 중에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 끝난 후 제자 융에게 가면서 점심을 사 먹으라며 조용히 지폐를 찔러준 거죠. 훗날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적 분석보다, 그 따뜻한 배려가 자신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합니다.
상대가 기분 나빠할 것 같으면 잠시 멈추는 게 어떨까요?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닌, 상대에게 필요한 게 뭔지 살피는 겁니다.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차가운 분석과 충고는 좀 내려놓고,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상대의 처지가 눈에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상대도 당신의 마음을 느낄 겁니다. 따뜻하게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마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