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안 돼.

상식에 대한 짧은 생각

by 읽는 인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상하다 느낀 게 참 많았습니다. 사소하지만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업무회의 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부장님 질문에 의견을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건 면박과 지적뿐이었죠. 그리고, 출근 시간은 엇비슷한데 퇴근 때가 되면 모두 부장님 눈치를 살폈습니다.


회사생활이 점점 갑갑해졌습니다. 평소 생각했던 것과 현실의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괴리가 힘겨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삼삼오오 모여 술 한잔 기울이며 툴툴대는 게 전부였죠.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알 수 없는 얘기를 듣고 답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 생각해?”,

“뭔가 비합리적이지 않아?”,

“합리적인 방법을 다시 찾아봐”


상식합리라는 단어가 그렇게 크고 난해한 문제인지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그저 신입이라 내가 모르는 뭔가 있겠거니 싶어, 그냥 적당히 살피면서 적응했습니다. 상식과 합리가 뭔지 묻는 질문에 선배들의 대답은 엇비슷했습니다. 눈치껏!”, 더 난해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눈치를 살피기보다 질문을 합니다. 면박보다 설명하고, 지적이 아닌 이해를 구합니다. 라때 같은 부장님들은 회사에서 스스로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여전히 상식과 합리라는 단어가 수많은 회의와 대화 과정에서 중심에 있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 그럼 그 상식이 뭔지 들어볼 수 있을까?”

설명을 유심히 들어보면 주로 그 사람의 입장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집니다. 당사자 입장에서 당연하다 생각하니 상식이고, 그러니 수용되어야 하는 게 합리적인 거죠.


상식은 '항상 통용되어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합리는 '이치나 원칙에 맞다'는 의미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의문이 듭니다. 항상 통용되는 지식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요? 항상 통용되는 지식은 절대 진리일까요? 이치나 원칙은 누가 왜 만들까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잘못된 걸까요?


상식을 얘기할 때면 살구나무에 얽힌 기억이 떠오릅니다. 살구는 시큼하면서 달달한 맛도 일품이지만, 말랑한 과육에서 베어나는 은은한 향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십여 년 전 부모님 뒤뜰에 살구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습니다. 스스로 대견해하며 막걸리를 마시던 참에 어머니께 된소리를 들었습니다.


살구나무는 귀신을 쫓는데, 집 뒤뜰에 심어 놓으면 제삿날에 조상님들이 어떻게 오시냐며 심하게 나무랐습니다. 좀 당황했지만, 요즘 시대에 뭔 귀신이냐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살구나무를 산마루로 옮기면서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뜰은 어머니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골의 정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제 상식에 기대 어머니의 동의 없이 살구나무를 심은 것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모순된 상황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상식相識을 상식常識라 말하고, 합리合利를 합리合理로 강요하는 거죠. 서로 달리 알고 있는 것을 통용되는 것처럼 말하고, 내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이치에 맞다 강요하는 겁니다.


1955년 미국에서 발생한 로자 파크스의 버스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버스를 타면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상식이고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부하다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미국 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상식과 합리는 태생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상식은 진리가 아니라 관습의 결과일 뿐이고, 합리는 관점에 따라 의도된 원칙이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질문에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오래전 선배들이 얘기했던 눈치껏이라는 말이 '상식과 합리를 내세우는 사람의 입장에 맞게'라는 정도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상식과 합리의 서사는 내 입장에 맞추어 달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그 자체로 타인을 판단하는 도구가 되거나, 경우에 따라선 폭력의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도 산자락 아래 어머니 밭에는 그때 옮겨 놓은 살구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올해도 6월 말이면 잘 익은 살구를 실컷 먹을 수 있습니다. 살구를 볼 때면 상식과 합리의 모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일상에서 나와 다름을 존중하고 상대의 입장을 살피고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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