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 대한 짧은 생각
프로젝트 디렉터, 제 직업입니다.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 정해진 예산으로 약속된 기간 동안 계획한 결과를 만드는 것을 프로젝트라 합니다. 프로젝트 디렉터는 그걸 이끄는 책임자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거죠.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과 회의하는 게 일상입니다. 유쾌하고 기분 좋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갈등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 모입니다. 프로젝트 디렉터는 갈등을 조정해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프로젝트 디렉터를 갈등조정자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표현만 다를 뿐 속내는 얼추 비슷합니다. 돈과 이권입니다. 그리고 이면에는 뒤틀린 감정이 있습니다. 돈과 이권은 비교적 조정하기가 쉽습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사람사이 뒤틀린 감정을 풀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말 곤란하죠.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버럭버럭 화만 내는 사람, 의도를 꼭꼭 숨긴 채 외면하는 사람, 웃고 있지만 수동공격으로 비꼬는 사람, 비장한 각오로 버티는 사람까지.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어떻게 할 거야?" 라며 속내를 비추는 사람은 고마울 지경입니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다 보면 의문이 듭니다.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까? 미리 막을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묘수는 찾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한 번은 생각을 조금 바꿔 보았습니다. 갈등이 꼭 나쁜 걸까요? 애타게 찾는 묘수가 있기는 할까요?
답을 찾기 전에 갈등이 뭔지 살펴보죠. 갈등은 칡덩굴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뒤엉키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칡덩굴은 왼쪽으로 감기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기니, 두 덩굴이 서로 뒤엉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서로 얽히는 게 아니라 방향이 다른 힘이 충돌하는 거죠.
칡과 등나무도 쓸모는 있습니다. 등나무는 꽃이 예뻐 조경수로 쓰이고, 칡은 뿌리가 한약재로 쓰입니다. 문제는 둘 다 덩굴식물이라 홀로 서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주변의 나무를 기둥 삼아 덩굴을 치감아야 합니다. 그래서 덩굴에 치감긴 나무는 햇볕을 받지 못해 피해를 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갈등은 나쁜 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갈등이 표면화된다는 것은 조직이든 관계든 뭔가 삐걱거린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입니다. 감기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여졌으니 좀 쉬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와 같습니다. 스트레스나 면역력은 신경 쓰지 않고 약물에만 의존하면 몸이 망가집니다.
갈등도 그와 같습니다. 조직이나 관계를 점검하지 않고 드러나는 갈등 상황만 다룬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릅니다. 갈등은 항상 덩굴을 치감을 나무를 찾습니다. 덩굴을 싹둑 잘라내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자랍니다. 그래서 나를 칭칭 감고 있는 덩굴에 숨 막혀하지 않고, 덩굴을 따라가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인간이 두 명 이상 존재 하는 한 갈등은 숙명과 같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였으니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과 다름없죠. 칡덩굴이나 등나무가 나무를 붙들고 있는 게 모두 살려고 그러는 것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 갈등을 나쁘게 볼 것도 없고,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등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린 사람은 갈등을 갑갑해하며 회피하거나, 못마땅해하며 상대와 전투를 치르려 합니다. 반면, 성숙한 사람은 갈등을 이해하려 합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살피는 거죠. 감정을 뒤트는 '뭔가'가 꼭 있습니다. 갈등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마음이 있어 갈등이 생깁니다. 칡덩굴과 등나무가 원래 그렇듯 우리 모두 평범하게 의존심이 있어 홀로서기 보다 든든한 나무에 기대려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누군가와 뒤틀린 감정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면, "아, 이 사람이 내게 바라는 마음이 커서 의존심을 채워달라며 화를 내고 있구나."하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사람의 감정의 덩굴을 따라가 보세요. 땅속에 깊이 파고든 칡뿌리처럼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상대의 마음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인정욕구, 애정욕구, 바라는 마음, 그 뭐든 당신에게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이 있을 겁니다. 상대의 마음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묘수를 이미 찾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