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

by 읽는 인간

영화 제목입니다. 영국 배우, 아네트 베닝과 빌 나이가 위태로운 중년 부부를 연기합니다. 29년 동안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 다른 길로 향하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은 부부라는 틀 안에서 사랑에 대한 기대가 서로 다릅니다. 아내는 관심을, 남편은 거리를 원합니다. 아내는 요구하고, 남편은 버거워합니다. 갈등을 대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아내는 직면을, 남편은 회피를 택합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마침내 폭발합니다. 남편 데이비드(빌 나이)가 아내 그레이스(아네트 베닝)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이때만큼은 심약한 데이비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호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기차를 잘 못 탄 거야”.


사실, 데이비드는 잘못 탄 기차에서 그레이스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때 기차를 잘못타지 않았다면 그레이스를 만날 일이 없었던 거죠. 지금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그때 기차를 잘못 탄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이비드의 얘기도 틀린 게 아닌 셈입니다.


그럼, 데이비드가 기차에서 만난 그레이스에게 처음 느낀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아마 그 순간은 사랑이 맞을 겁니다. 심약했던 데이비드가 유머러스하고 당당한 그레이스에게 끌렸겠죠. 하지만 29년의 결혼 생활에 대한 감회마저 둘은 다릅니다. 그레이스는 행복했다 말하고, 데이비드는 견뎌냈다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차가 뭔 죄겠습니까? 삶이란 게 계획된 방향으로 향하는 기차를 골라 탈 수는 없잖아요.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잘못 탄 기차에 앉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죄가 있다면 사람에게 있지 기차에게는 없습니다.


“사랑해”

“사랑합니다”

“영원히 널 사랑할게”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해”


아마 한 번쯤은 해보고 들어보았을 말들입니다. 참,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방문 넘어 작은딸이 아주 가끔씩 “아버지 사랑합니다, 주무세요”라고 말할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드물게 큰아들이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아버지 별일 없으시죠?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듭니다. 뭔가 내가 참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이렇게 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뭘까요? 사랑은 불꽃과도 같은 순간의 감정일까요? 아니면 숯불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따스한 온기 같은 정서일까요? 희생하는 것, 위해주는 것, 감싸주는 것, 사람들 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 사랑에 대한 의미도 수없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오늘은 좀 다르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뭔가 이거다 하며 들이밀 게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반대되는 게 뭘까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사랑의 반대 말이 뭘까요? 미움, 증오, 구속, 배신, 배척. 떠오르는 단어는 많지만, 역시 쉽지 않네요


사진 속에 아이들이 항상 웃고 있는 것은 즐거워서가 아니라 앞에 엄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진 속 연인의 화사한 얼굴은 좋은 카메라 덕분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거죠. 데이비드가 잘못 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그레이스를 바라보는 눈 빛은 정말 따스합니다.


우리 삶에 사랑만 있다면 이렇게 매 순간 행복할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미워할까요?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 무엇 때문에 서로 상처를 줄까요?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형제가 무엇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그걸 찾으면 사랑이 뭔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질문에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뭘까요? 저는 “바라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기대하는 게 없으니, 속았다며 서운해할 일도 없겠죠. 미워하고, 상처 주고, 원수로 만드는 것, 바로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요?


딸에게 연애를 하게 되면 바라는 마음을 갖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그럼 나는 누구한테 사랑을 받느냐고” 타박을 하더군요. 그러면 연애를 왜 하냐는 거죠. 맞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핍을 채우려 타인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랑을 가로막고, 또 변하게 하는 것 또한 바라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사랑이 뭔지 조금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이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상대의 결핍은 살피지 않으면서 내 결핍을 채우는데 급급하다면 사랑이 아닌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할 수 있겠죠.


사랑은 불꽃같은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불꽃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내는 온기 같은 정서로 인해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한 바라는 마음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구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은 이미 사랑으로 충만해 있을 겁니다.

keyword
이전 09화방금 내가 깨달았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