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내가 깨달았는데 말이야.

깨달음에 대한 짧은 생각

by 읽는 인간

한때 종교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라기보다 철학이 좋았습니다. 유교 경전, 불교 경전, 그리고 성경까지. 참 열심히 읽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다고 수년을 기웃거렸습니다. 절에도, 교회도, 성당도 가보질 않았으니 그저 책장에서 머뭇거렸다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답을 찾았을까요? 글쎄요. 그런 깨달음을 깨우쳤다면 인생이 좀 더 말랑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돌아봐도 그러지 않네요. 오히려 딱딱하게 긴장하며 살다 이제야 좀 힘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얻은 건 있습니다. 수십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잠깐의 실천을 통한 경험이 더 의미 있다는 거죠.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몸에 체화되기 때문 같습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인 거죠. 깨달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합니다. 머리로 지식을 이해하는 것과, 경험으로 지혜를 체득하는 것. 지식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더군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정한 깨달음은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깨달음 하면 아무래도 경전이 먼저 떠오릅니다. 오래전 경전 공부를 하면서 옛 현인들의 "깨달음"이 참 궁금했습니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걸까? 시험문제가 아닌 바에야 깨달음을 어떻게 확인할까? 깨달은 다음에는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될까? 물론, 저 정도 깊이의 질문에 대한 답과 설명은 책 속에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 답이 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아닌 지식의 알음아리 정도죠. 그렇다면 깨달음이 현인들이나 수준 높은 철학자들의 전유물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흔하게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합니다.


유치원생 딸이 꼬깃한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을 건네줄 때 가슴 벅참이 뭔지 깨닫습니다. 사랑하던 연인과 이별 후에야 상실감이 뭔지 깨닫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앞둔 친구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는 순간 무기력이 뭔지 깨닫습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리움이 뭔지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모든 순간들은 몇 마디 언어로 담을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순간 순간의 깨달음이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깨달음이 뭐 별건가요? 여태껏 몰랐던 것을 지금 알게되면 그게 깨달음 아닐까요? 누군가 알려주는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또한 깨달음이 아닐까요?


저도 책속에서 찾지 못했던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좋은 사람이 아닌 어제 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제가 경험으로 깨달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저만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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