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대한 짧은 생각
대화, 참 어렵죠?
평소 말주변 좀 있다 소릴 듣거나, 논리적인 분들이 의외로 대화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신기하죠? 그런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말주변이 있는 분들은 자기가 말을 잘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분들도 요목조목 조리 있게 자기표현을 잘한다는 걸 알고 있죠. 그런 만큼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여기에 내가 옳다는 신념이 더해지면 아찔해집니다. 이때부터는 대화가 아니라 설득이나 설명이 됩니다. 상대가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말을 잘 못하고, 비논리적인 분들이 대화를 더 잘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화를 잘하는 것과 말을 잘하는 것은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화對話는 마주이야기한다는 뜻입니다. 관계를 두텁게 만드는 참 정겹고 좋은 뜻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만나는 대화는 버겁고 어렵습니다. 저도 아내가 대화 좀 하자 말하면 긴장부터 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거죠. 아마 어릴 적부터 학습된 반응일 겁니다. 갈등을 풀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 여태껏 대화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쉼 없이 뭔가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부부나 연인이 아닌 바에야 둘 이상이면 어색한 게 당연한데 말이죠. 침묵이 어색하고 불안하니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 거죠. 때론 어색해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하니 생각나는 문구가 있습니다. 누구누구와의 대화라는 문화행사 문구입니다. 회사에서도 대화라는 제목을 단 회의체가 많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대화가 아니라 혼자 말하거나, 기껏 해봐야 묻고 답하는 정도일 텐데. 질문조차도 자칫 버릇없다, 눈치 없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데, 왜 꼭 대화라는 단어를 쓰고 싶을까?
아마 소통한다는 의미를 두고 싶은 게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듣는 사람도 소통이라 느낄지 의문입니다. 그러면 대화는 뭐고, 어떠해야 잘할 수 있을까요? 마주이야기하듯이 말입니다. 흔히 경청을 하라고 합니다. 귀 기울여 들으라는 의미죠. 한자 “들을 청聽”에서 답을 좀 구해보겠습니다.
“聽”을 풀어보면 耳(귀) + 十(온전함) + 目(눈) + 心(마음) + 王(중심)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온전하게 마음을 담아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수천 년 전 옛사람들도 듣는 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했으면 이렇게 많은 의미를 모았을까 싶네요. 그저 놀랍습니다. 대화에 경청하고 있다는 말, 쉽게 쓰기 힘들 것 같네요.
우리가 일상에서 대화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상대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이죠.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유가 다양하지만, 대화가 잘되는 사람들은 이유가 엇비슷합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는 분들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합니다. 자기 말의 파장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기 마음을 잘 살필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의 마음도 살피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을 올바르게 사랑하듯이 말입니다.
경험에 비춰보면, 대화는 타인의 세계에 머물러보려는 용기이고, 침묵마저 이해받는 공간이 되었을 때,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원하십니까? 내 마음을 먼저 추스른 후에, 타인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대화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