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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by 송완주

두 번째 회사 퇴사 후 생각보다 오래 백수로 머물렀다.

원래 2주에서 한 달만 쉬고 구직을 하려고 했다. 생각은 생각일 뿐. 모아둔 돈도 있겠다, 약 7개월을 쉬었다.


생각 없이 놀 땐 묘한 불안감만 맴돌았는데 구직 1일 차부터 불안에 휩싸여 미치는 일보 직전이었다.

그놈의 경제는 좋아진 적이 없다지만 취준 할 때마다 역대급 불황을 찍는 듯했다.


운 좋게 취업한 곳은 직원 20명 남짓의 규모의 회사였다. 동갑인 사수는 인상도, 사람도 괜찮아 보였다. 그분을 몇 번 밖에 못 봤지만 회사를 더 다녔으면 꽤 친해졌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지금도 든다.

아쉽게도, 미안하게도 이틀 출근하고 퇴사했다.

아침마다 대표가 마실 물을 떠놔야 하는 게 싫었다. 탕비실과 대표실이 그렇게 멀지도 않으면서 그 딴 건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거 때문에 퇴사한 건 아니지만.


그다음 회사는 원래 전공자를 뽑으려다가 안 뽑혀서 전공자가 아닌 날 뽑았다. 면접 볼 때 회사 대표가 물었다.


“간단한 영어 할 줄 알죠?”


간단? 단어 정도는 알지. 흔쾌히 안다고 대답했다. 알긴 개뿔.

함께 일하게 된 팀원들은 영어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외국인 고객과 통화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틀 다니고 퇴사.

미안하지도 않았다.

이딴 푼돈을 주니까 전공자가 지원을 안 하지.



두 개의 회사를 이틀 다니고 나니 더 초조해지고 미칠 지경이었다. 다신 종로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은 뒤로 하고 주얼리 회사에 지원했다.

살릴 수 있는 경력이라고는 주얼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서류 통과는 했는데 면접에 가기 싫었다. 그래도 갔다.

그 무렵 집 근처 소기업에서 면접을 봤다.

면접 본 두 회사에서 합격 소식이 왔다. 집 근처 소기업을 선택했다.


그곳에 가면 안 됐다. 그렇다고 주얼리 회사에 가야 했다는 건 아니다. 다른 곳을 더 지원했어야 한다.

너무 급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 하는 선택은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세 번째 회사는 내가 다닌 회사 중 직원 수가 제일 적다. 이곳을 다니고 앞으로 절대 직원이 적은 곳은 다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직원 수가 꼭 중요한 건 아니다. 어딜 가던 사람이 중요하다. 다만 사람이 적으면 나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다. 업무에서도, 업무 외적인 거에도 그렇다.


애석하게도 나는 1인분을 겨우 해내는 사람이다. 1인분을 채 채우지 못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1인분 이상은 못한다는 거다.

월급은 최저시급에 몇 푼 더 얹어주는 거면서 왜 그렇게 바라는 건 많은지. 결과적으로 이 회사에서 얻은 건 사실상 실업급여 밖에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없구나. 실업급여는 나라에서 준 거잖아. 그 회사에서 준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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