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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의 결과는 악몽만이

by 송완주

두 번째 회사인 카드 단말기 회사를 퇴사할 때 얻은 건 원형 탈모였다.

미용실마다 듣는 말이 꼭 있었다.

‘원래 숱 많으면 추가비 받아야 돼요.’ 추가비를 받은 곳은 없었으나, 숱이 적으면 돈을 덜 받나? 참나.

살면서 M자 탈모는 살짝 걱정해 봤어도 원형 탈모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던 어느 날.

오른쪽 머리카락을 날리는데… 머리카락이 단 한 번도 난 적 없는 뺀질뺀질한 피부가 머리카락 사이에 있었다.


청년내일채움도 얻었다. 회사 내 팀 이동을 하지 않았으면 못 받을 뻔했던 돈이다. 어쨌든 팀 이동을 해 2년 반을 다녔으니 잘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리고 퇴사 3년이 지났는데도 꾸준히 연락하는 동료들이 있다. 친구들보다 더 많이 만나고 새로운 걸 함께 하는 친구가 되었다.

나이를 먹고 친구를 사귀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사회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얻은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세 번째 회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곳에서 얻은 건 전무하다.


장점도 있긴 했겠지. 단점이 장점을 덮으니 떠오르는 건 단점뿐.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의 의견에 조금의 반박이나 다른 의견을 내비치기 어려울 땐 더더욱.

회사 상사나 대표의 말을 그렇게까지 많이 들었던 건 그 회사가 압도적이다.(이하 그 회사라 하겠다.)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중년 남자는 혼자서도 깰 수 있다!


그 회사 대표는 자아실현을 자신 얘기 쏟아내는 걸로 채우는 듯해 보였다.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갔다. 오디오가 물리면 한 번이라도 상대에게 먼저 얘기하라는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회사에서 대표니까 그래도 된다 치자. 내가 왜 회사 대표 얘기를 그렇게까지 들어야 하는데?


이전 회사에선 회식이 아니면 회사 대표와 겸상을 한 게 손에 꼽는다. 회식이 아니면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다. 그 외엔 마주치면 인사 정도.



그 회사에선 잘렸다. 권고사직. 그냥 해고지 뭐.

사유는 업무와 맞지 않아서라고 말해줬다. 사실 업무만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른 이유 없다. 그냥 일을 못해서다.

나름 열심히 하긴 했다. 근데 그게 다였다. 잘하진 못했다.

연봉도 동결시켜 놓고 그 연봉조차 주기 아까운 직원이라 자른 거다.


연초부터 해고라니. 상상도 못 한 결말에 충격받았다. 돌이켜보면 해피엔딩이다. 그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퇴사 후였다.

그 회사 대표의 망령에서 벗어나는데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가 털어대던 TMI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희한한 건, 그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폭력등등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챙겨주고 직원들끼리 사이좋은 회사였다. 나를 제외한 고인물들과 그 외 직원들은 조화를 이루며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 궁금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남의 Too Much Information을 알게 되는 것도 폭력이었다. 괴롭힘의 일종이었고, 성희롱도 있었으며,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들었던 건 ‘좋은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을 갖게 되어 마냥 싫어할 수만도 없었다는 거다.



남들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의 작은 정보 하나, 하나가 떠올라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sns 안 하는 거. 자식 중 누가 본인을 닮고, 성격은 어떻고, 누구를 더 편애하는지. 본인 부모님은 어떻고. 자긴 부모 누구를 닮고. 그의 MBTI 특성. 운이 남들보다 좋은 편이고. 어떤 타입의 사람은 싫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반복하며 말하며. 자신의 포부가 어떻고. 기타 등등. 지금은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희미해졌다.

이딴 걸 왜 내가 알아야 하지?


술 먹고 운전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취할 정도로 마시고 꾸역꾸역 운전대를 잡는 인간.

밥 쳐 먹다가 야동 얘기를 꺼내던 그 인간. 신나서 떠들던 남직원들. 뭐가 그렇게 신나셨어요? 안 부끄러우시죠? 네, 그러니까 그렇게 사시죠. 앞으로도 그렇게 사세요.


내게 그 회사란?

물경력, 연봉동결, 악몽 같은 대표 및 직원들의 TMI,

얻은 거 없는 과거.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서도 떠내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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