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디베르티멘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의 매주 한 편 영화를 보는 '밤극장' 프로젝트도 이제 조금씩 끝이 보인다. 한 계절 동안 개인 프로젝트 같은 것을 한 셈인데, 덕분에 이 여름이 특별한 시절이 되었다. 이 시절을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좋았다/나빴다, 의미 있었다/없었다, 더웠다/진짜 더웠다 등) 모르겠지만 소환하는 법은 알고 있다.
지금 내 멜론 플레이리스트와 유튜브 시청 기록에는 '밤극장' 영화들의 OST가 정렬되어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늘 그 영화의 OST를 찾아들었고 청소, 설거지, 작업 등을 할 때도 자주 틀어놓았다. 워낙 좋은 음악들이기도 하지만 이 시절을 추억하기 위한 마중물을 만들고자 의식적으로 듣고 있다. 언제든지 이 음악들을 들으면 나는 이번 여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보다 선명하게. 여름이 끝난 후에는 더 이상 듣지 않고 한동안 봉인해두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시절이 묻지 않으니까(그렇게 생각하니 더 열심히 들어야겠다).
'행복한 가정들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은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행복한 이유도 불행한 이유도 살펴보기 나름, 말하기 나름.' 지금 나는 인생에서 큰 난관을 당면하고 있어서 불행하고 영화 음악을 틀어놓고 필요한 일들을 반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 정도면 그래도 행복한 편 아닌가 싶지만.
그래서 요즘엔 무엇을 듣고 있나, 혹시 궁금하신가요? 요즘 듣고 있는 음악은 이것입니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영화 <디베르티멘토>를 본 뒤로 계속 듣고 있습니다.
영화는 8월 17일, 박찬욱관에서 봤다. 이제 나의 밤극장은 광화문 씨네큐브와 박찬욱관의 대결로 거의 좁혀진다('딴딴경영'의 광화문 씨네큐브냐, '완전 붕괴'의 박찬욱관이냐). 두 곳 모두 상영을 하고 있었는데 시간대가 맞는 박찬욱관을 선택했다. 영화 시간은 밤 10시 20분.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객석을 채웠다. 아무튼 여전히 궁금한 것이다. 이 시간대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당신들은 봄에도 이랬으며 가을에도 이럴 건가요? 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또 영화는 시작되었다.
디베르티멘토
에펠탑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프랑스 영화 <디베르티멘토>는 알제리 이민자 가정 출신 쌍둥이 자매 '자히아'와 '페투마'의 이야기다. 파리 교외 지역 팡탱에서 살며 각각 세계적인 지휘자와 첼리스트를 꿈꾸는 자히아와 페투마는 파리의 명문 음악 고등학교로 진학하지만 단원들은 출신, 성별, 나이를 이유로 이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자히아의 오케스트라 지휘 연습 날. 상당수의 단원들이 연습을 보이콧하고 자히아는 큰 수모를 겪는다. 하지만 이어진 참관 수업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 티브이로 보았던 마에스트로 세르주 첼리비다케를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될 기회를 얻는다. 본격적으로 지휘 수업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가던 자히아는 자신을 가로막는 벽을 부술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건 바로 자신만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것. 중심부와 주변부를 경험하며 서로 다른 문화가 사실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이를 알리고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의 지휘자가 된다.
<디베르티멘토>는 실존 인물인 지휘자 '자히아 지우아니'의 삶을 영화하였지만 사실은 음악이 주인공인 영화다. 인물들의 시련, 위기, 갈등과 같은 요소는 존재하나 극적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대신 음악이 삶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부각시킨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뒤 기억에 남는 건 조그마한 티브이로 클래식 공연을 보고 있는 부부(자히아의 부모),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여는 가족들,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는 사람의 웃음,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진지한 표정 같은 것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필요했던 유일한 증거는 음악이었다'라고 새기길 원했다(실제로 새겼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커트 보네거트 본인도 모를 것이다). 그 말은 음악이 기적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기적이 하는 모든 것들은 음악도 할 수 있다. 그런 기적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역시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내내 고생하는 두 쌍둥이를 보면서도(그들에게는 몹시 미안하지만)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디베르티멘토'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자히아는 깊은 실의에 빠진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그녀에게 작은 북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누군가 스네어 드럼을 치고 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 자히아의 눈에 그녀를, 정확히는 마에스트로의 지휘를 기다리는 '디베르티멘토' 단원들이 보인다. 그들 앞에 선 자히아. 마침내 그녀의 지휘봉이 움직이고 플루트의 독주와 함께 라벨의 '볼레로'가 시작된다.
너무도 유명한 이 음악은(하지만 나는 이때 처음으로 전곡을 들어보았다) 하나의 주제가 여러 악기들로 반복 연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물론 음악이 점점 고조되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 음악의 구성과 우리 삶의 구성이 닮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지만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이 아이러니를 점점 더 깨닫고 반복되는 삶의 리듬도 점점 더 체화한다. 그런 삶의 과정이 라벨의 '볼레로'와 공명하면서 각자의 인식이나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반복되는 것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꽤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어두운 쇼핑몰을 걸었다. 적막한 이곳이 몇 시간 뒤엔 사람들로 북적일 것을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방과 후 서랍에 두고 온 책을 가져가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갔던 학교에서 텅 빈 교실을 마주했을 때처럼. 끝을 목격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괜한 감상에 빠질 필요는 없다. 삶은 반복되니까. 주차장 부근의 한 매장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일의 영업을 준비하기 위해 이 새벽에도 분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곳만은 불이 환했고 사람들의 활기가 넘쳤다. 나는 잠깐 멈춰 그들의 작업을 바라보다 다시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