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를 많이도 애용했었습니다.
못난 선, 삐져나온 선, 방해되는 선, 어울리지 않는 선들은 모두 지우개로 깔끔.깨끗하게 지웠습니다.
원하는 형태를 그리기 위해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예쁘고 바르고 돋보이는 아름다운 선만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게 좋은 그림인줄만 알았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문득,
내가 지워버린 모든 선들도 결국 그 형태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주어진 내 환경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안정과 인정의 결과만을 가져가려 했었고,
그 뒤에 따른 무수히 많았던
실수, 자만, 욕심, 후회, 어설픔, 미숙함.
그것들 또한 내 삶의 일부였으며 어쩌면 그것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지우개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두려고요.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든 선들을요.
단순한 형태 하나에도
헤매이고 흐트러지며 그려지는
저 서툰 선들을 보는게 좋아졌습니다.
그게 ‘나’라서요.
그게 ‘당신’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