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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일도만 Dec 18. 2023

시어머니와 이혼하기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라지만

'시'자는 역시 다르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흔히 주변에서 하는 말이다.

이정도면 관용구라고 할 수 있다.


결혼과 이혼 모두 당사자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가족과 가족의 결합과 해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혼을 하게되니

시댁과도 당연하게 이별을 하게되었다.




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그자식이 아니라 시어머님 때문이다.

(어쩌면 결혼을 결심한 이유부터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어머님은 단아하시며 따뜻하고 올바르시다.

여리고 희생적이다.

시아버님은 나에겐 좋은 분이셨지만

시어머님께는 독단적이고 소통안되는 제멋대로인 남편이셨고 아들은 말해 뭐하나.

이 지경까지 만들었으니 시어머님 속을 여러번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그 자식의 집안은

소위 '손이 귀한' 집안이다.

그 자식도 외동아들이고 시아버님도 외아들 장남에다 윗대까지 올라가면 더더욱 그렇다.

시어머님이 결혼 하셨을 때는

증조시부모님과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상황인데

남편이라고 자상하길 하나

시어머님이 서울에서 수술 후

밤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 날에

집안은 개판에다가 수술 하고 온 아내에게 배고프니

밥차리라고 말하는 남편과 살아야했다.


그 자식과 연애할 때

그 자식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님께 문자가 왔다.


얼마전 어머님 생신이셨는데

아들이나 남편 모두 말 한마디도 없이 지난 것이

서운하셔서 온 문자였다.

그때도 이 자식은 어머님의 문자를 무시했다.

확신하는데 어머님 생신이 언제인지

지금도 정확하게 모를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 집은

생일에는 가족식사를 하며 축하하는 문화라서

더욱 그 문자가 안쓰럽게 와닿은 것 같다.


그래서 결혼기간동안 한 번도 시어머님 생일은

빠트린 적이 없다.

아버님 생신엔 못가더라도 어머님 생신은 무조건 챙겼다.

케익을 맞추고 깜짝 선물도 준비했다.

어떤 해에는 시이모님들도 초대하여 게임도 하고 선물 증정식도 했다.


살갑고 대하기 쉬운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이상으로 시어머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이다.




결혼 할 당시에

아빠의 오랜 병안때문에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혼수를 할 수준이 못되었는데

시어머님이

돈이 오고가는 것은 어떻게든 마음이 상할 수 있다며

내가 가족으로 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시댁에는 제사가 추석과 설날을 제외하고도

10번정도 더 있다.

결혼식 이후 이바지음식을 들고 깜짝 방문을 한 날도

제삿날이었는데

왜 말씀 안해주셨냐고 하니까

본인 대에서 모든 제사를 마칠 것이고,

날짜를 알려주면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아예 안알려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또 그 자식이 외도가 있기 한 참 전에도

내 두 손을 잡고

본인이 아들을 잘 키우고 싶었지만 외동아들에 시어른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오냐오냐'하며 큰 부분이 많다며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미안하다고

먼저 말해주셨던 분이다.

오히려 그러시니 어머님 앞에서는

그 자식의 몇 안되는 잘한 점을

부각시켜서 칭찬하게 되었다.


시댁에서 자고 오는 날에는

전날 아버님과 함께 술 마시고

점심이 되야 일어나는 며느리를 위해

따뜻한 해장국도 끓여놓으시는 어머님이셨다.


흘려 말하는 내 한마디 한마디에 귀기울이시고

김부각을 좋아한다는 말에

집안 식구 아무도 안먹어도

며느리를 위해서 찹쌀가루 묻혀

김부각을 정성껏 해주셨던

정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신

소중한 시어머니시다.




자부하지만 어머님의 유일한 소통창구가 나였다.

평소 말씀이 많이 없으셨는데

내가 시댁에 가는 날이면

아버님께 화난 이야기 부터 가족이야기

어머님 친구분들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또 스마트폰 활용이 어려워 해결하지 못한

세금이나 보험, 은행문제 등도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면

부담스럽지 않게 해결해드렸다.


어머님의 연락에는 바로 답하고

어머님의 부탁은 바로 해결했다.


이혼하는 와중에도

시어머님이 정말 가고 싶어하시는

임영웅 콘서트를 예매하려고 도전했다.


사랑하니까 모두 다 해주고 싶다


딱 이 마음이다.


내가 해줄 수 없는 부분까지도 해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물으면

시어머님에 대한 내 마음을 되뇌이면 된다.




그 자식의 첫번 째 외도를 넘어갈 수 있던 이유에는 시어머님도 있었다.

당시에는

자식의 외도를 알게 된 어머님의 마음까지

헤아릴 겨를이 없었지만


훗날 친정엄마가 이야기하길

시어머님이 엄마에게 전화하여 울면서 진심으로 사과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님의 마음에도 멍이 들었다.


두번째 외도 이후

마음 단단히 먹고 내가 이혼을 이야기 했을 때

그 자식이 보는 앞에서

어머님은 나에게 무릎까지 꿇으셨다.

내가 oo이 없이 어떻게 사냐며

혹여나 내가 떠날까 내 모든것을 붙잡고

우셨다.


그렇기 때문에 두번의 외도를 알고도 그 자식과의 관계를 유지할 생각을 했던거다.

물론 지금은 다른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착각을 했다.

결혼은 두 성인이 만나서 하나의 가족이 되는 건데

아무래도 나는 결혼을 시어머님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자식과 이혼한 것보다

시어머님과 이혼하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


재산분할 이후

어머님과 둘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기 위해 모았던

여행통장을 해지하고

입금을 해드리려고 연락을 드렸다.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카톡으로 연락이 오셨다.


아직도 서로의 이름만 들어도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나고 운다.


이 글을 쓰면서

시어머님과의 추억을 되내이며

몇 번을 울먹였는지 모른다.


정말 나는 시어머님과 이혼을 하는 중인가보다.




안녕히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게 주신 사랑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께요.

사랑합니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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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나눈 시간

그 한 순간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고

내게 넌 벅차도록 행복했던 꿈

이제 마지막 장을 넘겨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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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어 여기까지


권진아 이별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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