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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일도만 Jan 08. 2024

이혼의 흔적을 지워야 하나요?

이혼 후 일상 살아가기 1편

그래도 호적은 깨끗해

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 깨달았다.

주민등록 초본이 지저분해졌다.

그 자식과 결혼하고 이혼했던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주민센터나 구청에 가서

혼인 관련 기록들을 다 지워달라고 떼를 쓰고 싶다.


결혼 기간 동안 몇 차례 이사했던 기록들도

모두 남겨졌다.

이혼 후 일부 기간동안 같이 지냈기 때문에

세대주의 배우자에서

동거인으로 변경되었는데

이것도 또 기록되어있다.

행정처리를 지나치게 잘하는 대한민국 덕분에

세세한 기록들이 다 남아있는

지저분해진 나의 주민등록초본이다.


뿐만 아니다.


결혼기간과 연애기간 합치면

총 13년이다 보니

휴대폰 속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과 영상도 넘쳐나고

컴퓨터와 외장하드에 저장된 기록도 너무 많고

연락처, 이메일,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등등

그 자식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그 자식에게 미련이 남은게 아니면

모두 다 초기화 시키면 될 껄

왜 아직도 정리하지 못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자식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즐거웠던, 행복했던

내가 담겨져 있어서 정리를 못한

아니 하지 않은 것 같다.


tvn 알쓸인잡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심채경 박사님이

알랭드 보통의 책을 비유하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연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것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과 함께있는
그 순간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멋진 식당에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있는 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순간을 즐기는 나

결국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자식이 아니라

그 때의 나를 사랑한 것 같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아직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그 전의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들을 간직 하는 것이

상대방에겐 유쾌한 일이 아닐 텐데

아직 오지도 않을 새로운 인연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과거의 흔적을 깨끗히 지워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사람이 영원히 함께할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좋았던 추억들 까지 모든걸 지워야 하나

단지 그 자식이 끼어있을 뿐인데


과거를 이야기 하면 안되는 것인가.

그럼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단순한 연애도 아니고 결혼하고 이혼한 것인데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했다고 말해야하나

성격차이로 이혼했다고 말해야하나

연애를 어떻게 했더라

........ 등등의

수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혼자 카페에 앉아 한 마디도 안했지만

수만가지의 생각으로 마음은 시끄럽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시 -  방문객 중


이 시를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길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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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아는 저 많은 사람은

사랑의 과걸 잊는 걸까

좋았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감추려 하는 이유는 뭘까

난 항상 내 과거를 밝혀 왔는데

그게 싫어 떠난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들도 내 기억 속엔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어 언제나

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어

내 경험에 대해

내가 사랑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 언제 까지나


주주클럽 나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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