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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일도만 Sep 15. 2023

상간녀의 등급은 누가 정하나요

배우자를 두 번 죽이는 거짓말 퍼레이드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격이고 배신이다.

그러나 나를 더 힘들게 했던건

되도 않는 거짓말과 변명들을 쏟아부으면서 나를 기만했던 그 자식의 태도였다.



내가 확보한 증거는 사실 빈약했다.

여자가 차 앞으로 지나가는 블랙박스 영상 하나와

부산에 대한 검색기록만 사라진 네비게이션 뿐이었다.


눈 앞에 있을 때 그 자식의 표정과 말투 등을 봐야 더 정확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지금이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 바로 공격이다.


'부산에서는 게임하는 형 집에서 잔거야?'

'응 밖에서 밥먹고 술마시고 게임하고 잠만 그 집가서 자, 남자 혼자 살아서 냄새나'

'형은 부산역 근처에서 살어? 서면? 오피스텔에 사는거야?'

'그건 왜물어?'


'내가 실은 조금 이상하고 궁금해서 그런데 네비게이션에 부산에 대한 기록만 없더라고'

'...음... 업데이트 되서 그런가?'


그 자식이 밥을 먹는 속도가 줄었고,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놓치면 안된다. 바로 공격이다.


'그래서 블랙박스를 검색해봤는데 차에서 어떤 여자가 내려서 앞을 지나가는게 있더라고'

'응? 여자? 뭐 말하는거지? 아무래도 차에가서 확인해봐야겠다. 뭐를 말하는거야?'


그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함께 차에 가보자고 했다.


휴대폰에 촬영한 영상이 있었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같이 지하주차장을 내려갔고

그 자식에게 부산에 대한 기록만 없는 네비게이션과 그 여자가 나오는 영상을 블랙박스에서 보여줬다.


자기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그에게

'의심을 하는 거면 정말 미안하지만 번거롭더라도 형한테 오피스텔 주차장 가서 너가 주차한 위치에서

사진 한장만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면 안될까?'

'형 지금 일하는 중이야'

'퇴근 후에 그럼 부탁할께, 미안해'


나도 확실한 증거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의심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고

그렇게 저녁 식사 정리를 끝내고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자식이 다가왔다.

잠깐 이야기를 하면 안될까?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실망과 분노와 더불어 촉이 맞아 떨어짐에 쾌감도 살짝 있었다.

'아. 내 촉이 맞았다. 녹취를 해야겠다'


그는 모르지만 휴대폰 녹음기를 켜두고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 자식이 말하길 형들이랑 놀다보니

형들이 1종 노래방을 가자고 그래서

거기서 만난 여자라고 했다.


사실 나는 업무 특성상 정말 다양한 고객들을 만난다.

그 중에는 파친코를 운영하는 사장님도 있고

1종 노래방, 2종 노래방을 하는 분

중견기업 여사장님, 의사 사모님, 변호사 사모님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전남편이 게임하는 친구들의 수준을 아는데

결코 1종 노래방은 갈 수 없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술만 마시고 데려다 준거란다.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니.'


추궁 끝에 또 이번엔 퇴폐 마사지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한다.

그냥 진지한 사이는 아니고 그 날 한 번만 만났다며

퇴폐 마사지 여자라고 하면

더욱 화를 낼까바 1종 노래방 도우미라고 했단다.


정말 눈물나도록 화가 났다.

외도를 했다는거 자체도 화가나는데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해대며

'나'를 위해 그렇게 말했다는 구질구질한 변명이 너무 비열하고 더러웠다.


또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성이면 하룻밤 자고 노는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내가 반려자라고 생각하고 함께했던 사람이

이 수준 밖에 안된다는게 실망스럽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나 저것도 거짓말이었다. 진짜 상간녀는 나중에 나온다)


첫번째 외도 당시 나는 시험관시술을 준비중이었고

외도 사실을 알고 난 사흘 뒤는 난자채취가 예정되어있었다.

가뜩이나 면역억제제 주사와 혈전용해 주사까지 맞고 있어

내 배는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내가 우리의 아이를 준비하는 동안

이 자식은 이렇게 철없이 나를 배신하며 저따위로 살았구나.


시험관 시술을 위해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사를 넣고

질정을 넣어야 한다.

외도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나는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넣고

정해진 시간에 질정을 넣으며

분노와 상실감을 뒤덮고 울고 있었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건

아직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내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쓰레기랑은 당장 이혼하고

애는 무슨 애를 낳냐고 하겠지만

정말 그동안 아이를 갖고 싶었고

이미 시험관 고차수 실패자로서

난자채취 한 번이 절실했었다.

또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그 자식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고작해야 외도 사실을 안지 삼일째였다.


말할 수가 없다.

가족도 친구도 그 어디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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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해

내 모든걸 다 주는데 왜 날울리니

니가 나에 상처 준만큼 다시 돌려줄거야

나쁜여자라고 하지마 용서못해

차수경 용서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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