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만 비주류! 세계에서는 주류!
1970년 결성된, 록밴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이자 살아있는 전설 Queen.
2018년, Queen과 Freddie Mercury를 소재로 한 영화 < Bohemian Rhapsody >가 개봉을 하여
기존 팬들은 물론 이야기로만 듣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까지도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 Queen.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
누구 하나 퀸에서 빼놓을 수없는 완벽한 4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전설의 밴드.
누가 뭐라 해도 Queen 하면 이야기하지 않을 수없는 곡은
1975년 발매된 그들의 4번째 앨범 < A Night At THe Opera >에 수록된
[ Bohemian Rhapsody ]이다.
이 곡은 퀸의 음악과 밴드 자체를 대표하는 아이콘과도 같은 음악이다.
그들은 [ Bohemian Rhapsody ]를 통해
월드 클래스 록밴드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 차트에서 9주간 1위를 기록하고
미국 핫 100 싱글 차트에도 9위까지 오른다.
( 1위가 아니라는 점이 의문이다 )
모음곡 형식으로 크게 5개 파트로 나누어 작곡된 곡으로
인트로 / 발라드 / 오페라 / 하드록 / 리플렉티브 코다로 끝난다.
당시의 상업적인 곡으로는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구성에
라디오 방송용으로는 터무니없이 긴 러닝 타임으로
발매 당시 여러 가지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우려와는 반대로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를 이끌어 낸다.
프로그레시브 록 / 심포니 록을 표방하면서
진보적인 현대 록으로서도 완벽하지만
표면적인 오페라적 요소를 떠나서
곡의 전개 자체가 한 편의 오페라를 축약해 놓은 듯,
드라마틱한 전개를 진하게 느낄 수 있어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퀸의 대표곡이자
20세기 록 음악을 대표하는 곡이다.
또한,
[ Bohemian Rhasody ] 뮤직 비디오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거액의 예산을 투자하여
다양한 특수효과를 사용였으며
현대적인 뮤직비디오의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7년, 19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듀오, 그룹, 코러스 부문 최우수 팝 보컬 퍼포먼스상과
최우수 편곡상을 수상하였다.
머큐리는 이 곡을 위해
하루 10~12시간 이상의 노래 녹음을 했고
3주간 70시간이 넘게 진행된 180번 이상의 오버더빙으로 완성된 곡이다.
여담으로, 이 곡에 사용된 피아노는 폴 맥카트니가
[ Hey Jude ]의 녹음에 사용한 것과 같은 피아노를 사용했다고 한다.
정규 6집의 대표 수록곡이며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에 오른 히트곡!
[ We Will Rock You ]와 함께,
음악 감상용 보다는 스포츠 경기장에서
스포츠 정신을 강조할 때 또는 응원가로 더 자주 울려 퍼지는 곡이다.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순간
또는 감격적인 역전승의 순간 등
승리의 기쁨을 더욱더 격정적인 감동으로 몰아넣을 때 사용되는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승리를 위한 궁극의 응원곡이 아닐까?
뒷부분의 음역대가 특히 높은 곡 중의 하나인 데다가
항상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라이브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어서
프레디 머큐리는 공연 중에 자주,
한 옥타브를 낮춰 부르거나
스튜디오 앨범에서 높은 음역대를 녹음한,
로저 테일러가 대신 부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
1980년도 정규 8집 앨범 < The Game >에 수록된 곡이다
앨범 < The Game >는,
다른 지역에서의 엄청난 대중적인 인지도에 비해
턱없이 저평가된 북미, 미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앨범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의 로커빌리풍의
[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를 작곡하여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4주간 안착시켰고
존 디콘이 작곡한 [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가 3주간 1위를 차지한다.
그들의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1위 곡은 이 두곡뿐이다.
믿어지는가?
평론가들과 마니아들은
Queen이 미국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부진했던 이유들을 몇 가지 꼽는데
첫 번째 이유는
당시, 미국 록 시장을 지배하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즈 등의 기세와
해체한 지 얼마 안 되는 비틀스 솔로 멤버들의 위세에 눌려
록 마니아들과 평론가들에게 슈퍼마켓 밴드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퀸의 입지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록 팬들에게
자신들만의 입지를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도 비슷한 이유인데
초대형 록밴드들을 제외하더라도
이 시기가 미국 본토 밴드들의 중흥기라고 이야기하는 시기이다.
이글스, 레너드 스키너드, 올맨 브라더스 밴드 등의 컨트리풍 또는 서던 록 밴드들과 더불어
아메리칸 록의 자존심인 에어로 스미스, 보스턴, 키스, 반 헬런, 포리너까지 포진하고 있는
미국의 록시장에서 너무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던 녹녹지 않은 시절이었으며
세 번째는
평소, 지극히 R&B 지향적인 음악을 추구하던 존 디콘의 주로도 방향성을 잡아
디스코풍의 앨범으로 발매된 1982년 10집 < Hot Space >의 실패 이후
퀸은 미국 시장에서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흥행에 성공했다면 다양한 음악적 도전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슈퍼마켓같이 이것저것 안 가리고 여러 가지를 갖다 진열해 놓은 듯한
당시 퀸의 음악적 정체성의 애매모호함은
불명예스러운 팀의 해체설까지 나돌게 만든다.
그리고 퀸은 기나긴 침체기에 들어선다.
1985년 7월 13일 토요일에 개최된 Live Aid는
1984년 12월, 에티오피아 기근 구제를 위한 자선 싱글
< Do You Know It's Christmas? >의 대성공에 이은
두 번째, 밥 겔도프의 프로젝트이다.
이 공연에서 퀸은
< Bohemian Rhapsoy >으로 시작하는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브 공연으로 꼽히는
21분간의 공연을 마쳤고
그로 인해 Queen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공연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디 머큐리에게 닥쳐온 운명은,
당시로 사망 선고와도 같은 에이즈 진단을 받게 된다.
퀸은 공식적인 활동을 모두 중단한다.
1976년 5집 앨범 < A day AT The Races > 앨범에 수록되었으며
영국 차트 2위 /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13위에 오른 곡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가창력을 이야기할 때
보헤미안 랩소디와 자주 비교되는 대표작 중에 하나이다.
끝까지 음악 하다가 죽고 싶다는 프레디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하여
밴드 멤버들은 모든 스케줄을 그에게 맞추어,
마지막 순간까지 음반 작업을 진행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사망 전날 에이즈 확진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1991년 11월 24일에 영면에 든다.
1997년,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퀸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하게 되고
현재까지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다른 세션맨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1993년 프레디 머큐리 추모공연에서
조지 마이클이 리메이크한 [ Somebody To Love ]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조지 마이클이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 스타일을 오마주하여 편곡했다는 이 곡은
당시 음악적 침체기와 동성애와 연루된 여러 루머
그리고 그에 관련된 소송으로 만신창이 되어있던
조지 마이클의 중의적이고 복합적인 내면이
프레디 머큐리의 추모공연에서 음악으로 폭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날 공연의 백미를 장식한다.
음악사적으로나 평론가/ 록 마니아들에게는
동시대의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고
조사 기관들에 따라 약간의 다른 성적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쨌거나, 흥행적으로는
비틀스의 독보적 1위의 뒤를 이어
레드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즈와 어깨를 겨누며 당당히 2위를 다투는
전설의 록 밴드 Queen!
그들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진정한 Rock의 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