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서 온 사나이
아주 오랜 전, 대학 다니던 시절.
매 학기 기말 실기시험 지정 연주곡은 [ Blue Monk ]였다.
4년 동안 여덟 번의 기말고사 실기시험의 지정곡은 늘 같았다.
단순한 블루스 진행 위의 느긋한 멜로디,
손에 익은 블루 노트들.
그게 왜 시험곡으로 적합한지,
왜 교수님들이 그토록 이 곡을 고집했는지
당시로는 알 수 없었다.
1954년에 발표된 [ Blue Monk ]는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단순한 12마디 블루스 구조 위에 몽크 특유의 불협화음과
예측 불허한 리듬 감각이 응축되어 있다.
비밥의 복잡한 언어를 지나 자신만의 세계를 지향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곡은 전통적인 12-bar blues 형식을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 몽크는 대리 코드(substitute chord)와 감화음(diminished chord)을 섞어
익숙한 흐름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느릿한 템포와 어긋난 화성들은 블루스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도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몽크가 추구하는 리듬 패턴의 핵심은
일정한 음표 사이의 간격이 아니라 예측불허하게 마구 멈춰버리는 쉼표에 있다.
그는 의도적인 침묵(rest)과 미묘하게 어긋난 박자들을 통해
리듬을 엉켜버린 호흡곤란 상태처럼 다루었다.
건반을 찍어 누르거나 박자를 살짝 늦추는 그의 연주는
문장부호 같은 긴장감과 ‘엉뚱하지만 의도된 불안정함’을 조장한다.
멜로디는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그것들은 블루 노트와 불협을 가지고 장난치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다.
몽크의 어긋난 음정과 박자는 우연을 가장했지만 철저히 계산된 의도이다.
이 미묘한 어긋남이 곡의 생동감과 “몽크적 유머(Monk-ish humor)”를 만든다.
[ Blue Monk ]는 블루스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현대적 화성과 리듬적 실험을 결합한 곡이다.
비밥의 속도 경쟁에서 홀로 도망쳐 추구하던
느림과 여백으로 만든 새로운 재즈에 대한 역설과도 같다.
단순함 속의 복잡함, 불협 속의 질서,
그리고 질서 속의 숨겨진 논리 정연한 몽크의 유머.
이 모든 것이 이 한 곡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 〈Blue Monk〉는 오늘날까지도
재즈 피아노의 교본이자
몽크의 철학이 가장 선명히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몽크는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비밥 시대를 대표했지만,
그의 음악은 비밥의 연장선에서 한참 벋어 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비밥이 빠른 패시지와 화려한 즉흥으로 예술적 고지를 점령하려 했다면,
몽크는 그 반대편에서 ‘불규칙”과 ‘불협’을 활용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논리와 구조를 만들어 갔다.
그는 마이너 세컨드 간격의 음을 겹쳐 놓고,
그 불안한 틈을 엉뚱한 리듬으로 채웠다.
건반을 누른다기보다 ‘찍어 누르고’, 때로는 팔꿈치로 두드렸다.
그의 피아노는 선율의 멜로디와 화성을 위한 악기이기보다
두드리는 타악기를 연상시킨다.
몽크의 음악에는 쉼표가 많았다.
예기치 못한 쉼표의 느낌은
깊은 사색에 잠겨 멈칫 말을 멈춰야 하는 순간 같기도 하고
듣는 이의 집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된 침묵 같기도 하다.
그는 의도적으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여백을 만들어냈고
엉뚱한 불협화음 속에서도 그만의 묘한 질서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박자와 음정을 연주했지만
이상할 만큼 정확하게 틀린 음들을 연주했고,
정확한 음정과 박자가 아니지만
그 음들은 정확히 계산된 순간에만 존재했다.
[ Round Midnight ]은
재즈 곡들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재즈 발라드 중 하나이다.
한때 이 곡의 작곡가가 몽크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다른 곡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 ‘Round Midnight ]은 밤의 고요와 슬픔이 짙게 깔린
너무도 아름다운 서정적 발라드이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여전히 그 안에도 몽크 특유의 ‘불협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그는 이 고요와 정적의 순간에도
어긋나듯 스치는 불협의 한숨을 툭툭 내뱉는다.
1963년, 빌 에반스는 재즈 피아노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했다.
그는 한 명의 연주자로 세 대의 피아노를 동시에 대화시키는
삼중 오버더빙(Triple Overdubbing) 방식을 시도했고,
그 결과물은
마치 자신과의 내면 대화를 녹음한 듯한 앨범 < Conversations with Myself >로 남았다.
이 앨범은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실험이었고,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기악 재즈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그의 녹음 방식은 정교했다.
먼저 첫 번째 피아노로 곡의 기본 구조를 구축하고,
그 위에 두 번째 트랙으로 즉흥적인 멜로디를 얹었다.
마지막 세 번째 연주에서는 화성적 배경과 리듬을 보강하며
전체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쌓인 세 겹의 연주는
한 사람이 만들어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음향을 만들어냈고,
에반스의 치밀한 화성 감각과 사색적인 리듬 감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개인적으로 [ 'Round Midnight ] 연주들 중에 가장 사랑하는 연주이다.
몽크가 남긴 불안과 긴장, 고독의 여운은
빌 에반스의 손끝에서 서정적이고 내면적인 고요로 바뀐다.
첫 번째 피아노가 멜로디의 뼈대를 제시하면,
나머지 두 트랙이 그것을 감싸 안으며 화성적으로 질문하고 응답한다.
그 관계는 마치 심야의 독백이자,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와의 대화 같다.
음 하나하나가 길게 울리고,
페달의 여운이 남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빌 에반스가 ‘음과 음 사이의 공간에서
진지하게 사유하며 고심하는 과정을 느낀다.
몽크의 세계가 어둠 속의 긴장과 불안이었다면,
에반스의 해석은 어둠 속의 명상이다.
한 음악가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과 대화하며 남긴 기록,
즉 재즈 피아니스트의 철학적 독백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뉴올리언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작가, 배우의 경력을 가진 다재다능한 Ledisi는
2021년,
재즈계의 거장인 니나 시몬에게 헌정하는 앨범 < Ledisi Sings Nina >를 통해 평단을 극찬을 받은 바 있으며,
그녀의 네오소울풍 [ 'Round Midnight ]은
2014년 그의 정규앨범 < The Truth >의 보너스 트랙에 수록된 버전이다.
원곡이 가진 어둡고 복잡한 서정성을
그녀 특유의 풍부하고 강력한 R&B 네오소울 스타일로 풀어낸 것이 매우 흥미롭다.
사람들은 몽크를 “21세기에서 온 사나이”라 불렀다.
그 이유는
그의 음악을 21세기인 지금 들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 현대적으로 들린다.
그는 무대에서도 그의 음악만큼이나 예측이 불가능했다.
연주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를 빙빙 돌거나,
팔꿈치로 건반을 내리치고 발을 굴렀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 불렀지만,
그것은 몸으로 리듬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그의 내면은 복잡했지만,
그의 연주만큼은 늘 주저함이 없었다.
1950년대,
마약 혐의로 카바레 카드(Cabaret Card - 클럽 연주허가증 )를 잃고
뉴욕 클럽에서 연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다섯 해 동안 완전한 침묵 속에 갇혀야 했다.
그 시기에 탄생한 곡들이 바로
[ Epistrophy ], [ Straight, No Chaser ], [ Evidence ]였다.
연주 장소는 빼앗겼지만,
그의 음악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의 불협은 더욱 논리적으로 정제되었다.
그의 곡들은 지금도 재즈 교육의 필수 교본이지만,
좀처럼 잼 세션에서는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멜로디와 코드가 너무 정교하게 맞물려 있어서,
즉흥으로 변형하는 순간 곡의 균형은 이내 무너져 버린다.
몽크의 세계는.
누군가 자칫 가벼운 마음으로 건드리는 그 순간,
연주자들은 곧바로 큰 시험에 들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 Blue Monk ]로
그 문 앞을 서성이지만,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은 레퍼토리이다.
그의 모자, 터번, 그 기이한 몸짓들.
모두 현실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세우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몽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자신의 리듬으로 존재했다.
그의 피아노는 화성과 리듬 그리고
일상적인 재즈의 논리를 깨뜨리면서,
그 안에 자기만의 다른 질서를 세웠다.
불협 속의 질서, 예측불허 속의 리듬.
그것이 셀로니어스 몽크의 세계다.
이제 돌아보면, 대학 시절 매번 [ Blue Monk ]를 반복했던 그 시간은
일상적인 테스트가 아니라
‘몽크의 문법’으로 대화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재즈의 규칙을 바꾸고 싶었다기보다는
재즈 음악가 각자가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드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떠난 지 오래지만,
그의 시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21세기가 지날 즈음에는 그의 별명이
22세기에서 온 사나이로 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