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다시 만난 독일방사선과 의사.
남편은 가슴 수술 후 바로 방사선을 쪼이느라 들것에 실려 다녔다. 남편을 옮기던 사람들은 군복무대신 종교적 문제 같은 것으로 사회복무를 신청한 사람들이 했다. 나는 옆에서 링거병을 들고 쫓아가야 했다.
군복무대신 이일을 택한 이들은 환자를 위한 일들을 했다. 환자를 이동시키거나 환자들을 씻기 거나 하는 일들을 성실히 감당했다.
첫 단계 방사선은 가슴중앙에 있는 흉선부위를 쪼여서 종양을 깨는 것이 목표라 많은 양을 쪼이니 등까지 까맣게 탔다. 앞에 쪼었는데 등까지 타니 좀 무서웠다.
또한 그 부위는 물을 묻히면 안 된다고 했고 피부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파우더를 발라야 했다.
등이 타더니 시간이 흐르자 본래 없던 점들이 등에 많이 생겼다. 이것을 보면서 어떤 면에서 점은 변형된 세포라는 생각을 했다.
방사선 때문에 침샘도 망가져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에 감염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심한 고생을 했다.
약물치료가 끝난 후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서는 예방적 차원의 방사선을 약하게 쪼였다.
이 치료를 받기 위해 이번엔 남편이 스스로 걸어서 방사선과로 갔다.
남편을 본 방사선과 의사가 달려 나왔다.
"난 당신이 들것에 실려 올 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니 너무 기쁘다!"며 악수를 청했다.
참 고마웠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모두 내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었나 봐!"라 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의사가 직접 수술에 실패했다 했고 한국 간호사가 차트에 빨간 줄 갔다 했고 문병 오는 사람대부분이 불쌍하다며 울었다.
그래도 그 가운데 포기히지 않고 기도해 주신 분도 많았고 나도 살아날 것을 믿으며 견뎠다.
본인은 오히려 "그냥 죽고 싶다."라 하던 사람이었다. 그 말을 이젠 다 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다시 일깨워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것도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처일 수 있으니까 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또 감사함을 잊어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