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3개월씩 연장받는 생명!
남편은 두 번의 약물치료를 더 받고 퇴원을 했다.
의사의 권유대로 확률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달력을 보며 "이제 끝이네!"라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표시했다.
그러다 갑자기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1월 7일이었다.
세상에 갑자기 말이 안 나왔다.
작년에 대학병원에 입원한 날이 7월 7일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수술받고 방사선 치료하고 약물치료가 끝나서 보니 딱 6개월이 걸렸다.
꿈속에선 본 6이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지만 이젠 그 의미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그냥 살기 위해선 우리 힘으로 지불할 수 없이 큰 값이었는데 살려주신 것에 초점을 맞추자라고 생각했다.
죽을 것이었는데 은혜로 살았다고!
그 후 남편은 3개월마다 재발했는지를 보기 위해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침 일찍 7시경 가서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4~5시간이 걸렸다.
그러자면 병원복도에서 하염없이 있어야 했다.
그 기다림은 초조와 불안을 동반한 기나긴 기다림이었다.
한 번은 기다리다 옆을 보니 여자의 예쁜 부츠가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 참 예쁜 신을 신었네~"
하며 보고 있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젊은 여자였는데 울고 있었다.
병원은 그런 곳이구나 건강하다는 말 말고는 그 무엇도 웃음을 줄 수 없는 곳.,.
의사가 불러서 "이상 없네요."라 말하면 그 긴 기다림은 잊어지고 다음 3개월의 생명을 연장받은 기분으로 들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개월마다 검사를 받다 보니 그해 여름에 남편은 요양을 갔다.
요양을 다녀오니 남편의 혈색이 달라졌다.
핼쑥하고 핏기 없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요양이 좋은 줄 처음 알았다.
요양 후에 치료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의사들의 검진을 받아서 건강함을 증명해야 다시 일을 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일을 해도 된다는 결과를 받아야 실험실에 나갈 수 있다. 다시 복직이 되는 것이다.
두 의사한테서 받았는데 일해도 된다는 결과가 나와 멈추었던 실험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실험이 끝날 무렵 병이 났던 남편은 다시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험하기를 몹시 두려워했다.
실험 시 사용한 시약 때문에 병에 걸렸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참을 기도하고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실험은 끝이 나고 논문을 쓰게 되었다.
독일어로 써야 하니 실험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독일친구 자신들도 문법을 몰라 자신이 없다 했다. "그럼 누가 알지?"
그리고 부전공 2개를 시험 보고 마지막으로 전공시험을 보았다
학위논문이 통과하자 실험실학생들의 꽃다발과 선물을 받아 작은 파티를 열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파티를 했다.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셨다.
나를 늘 시험에 빠지게 한 간호사분도 웃고 계셨다.
마음 같아서는 "왜 웃으세요?"라고 묻고 싶었다.
독일에 온 목적을 이루었으니 이젠 한국으로 가서 일자리를 찾는 일만 남았다.
그 시절 유학생은 비자가 1년씩 연장되었고 공부가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문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독일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어려웠다.
외국인이 일자리를 얻으려면 외무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남편은 더 이상 병원 검진을 안 받겠다 했다,
좀 무모하지만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살겠다 했다.
나의 반대는 아무 소용없었다.
그렇게 남편의 추적검사는 더 이상하지 않았다.
그냥 맡기고 살았다.
그렇게 지냈는데 그리 불안하진 않았고 아직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