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해 크리스마스에
남편은 정말 오랜만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다섯 달이 좀 지나 살아서 다시 예배를 드리는 남편은 본당 의자에 앉자 모자를 벗었다.
내가 사 온 잔잔한 체크무늬 모자였다.
가슴을 여는 수술 때문에 살짝 앞으로 휜 어깨와 등, 마른 몸은 더플코트로 가렸다.
하지만 아직도 여윈 얼굴과 혈색은 창백했다.
나는 솔직히 모자를 벗지 말았으면 했지만 주님 앞이라고 남편은 망설임 없이 벗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 보기 흉해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본 교인들은 놀랐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으니 말은 못 하고 서로 쳐다보며 눈으로 말했다.
그간보지 못했던 교인들에겐 충격이었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고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만 했다.
예배 후 교인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했다.
어떤 이는 남편한테 이제 머리카락 안나냐고 물었다. "시간 지나면 다시 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라 했다.
사실 시댁은 아버님을 비롯 아들들이 모두 대머리이다.
남편만 그때 다 빠졌다 다시 나서 그런지 대머리가 아니다.
예배 후 나에게 "살아서 예배드리러 올 수 있어서 눈물이 난다!" 했다.
그리곤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걸이 시계를 사주었다. 뚜껑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모던한 모양의 시계였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시계보단 장식품으로 가방에 달고 다닌다.
남편이 선물로 사준 가장 비싼 물건이다.
대학 때는 길에서 은반지나 목걸이를 사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목걸이는 도금이 벗겨지고 은반지는 새까맣게 죽었다.
하지만 시계는 약이 없어 가진 않지만 변색은 안되었다.
그것을 보면 그때의 간절함과 소중함이 다시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때라 시내에 나가도 장식이 되어 있고 크리스마스장도 열려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이런 일상의 행복이 더욱 감사하게 다가왔다.
살아있으니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어서 귀한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 제일 귀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것은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이 이때처럼 와닿은 적이 없다.
그 이후론 잊지 않고 지낸다.
오늘 아들과 먹은 짜장면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쓸개제거 수술 후 난 설사 때문에 짜장면을 오랫동안 못 먹었다.
또 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귀한 것이라는 것을 가슴 시리게 안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지질 않을 테니 말이다.
매 순간이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