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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며느리로 산다는 것

20화. 친정아버지 장례식

by 권에스더

우리가 살던 집은 늦게지어서 그런지 강남인데도 심심하면 물이 안 나와 물탱크물을 써야 했다.

공사도 몇 번 했지만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려고 물을 틀면 쫄쫄쫄 나와 겨우 그릇을 씻었고 이때 아들이 샤워를 하면 샤워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설거지나 샤워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특히 세탁은 아무도 물을 안 쓸 때 해야지 안 그러면 비누도 풀리지 않았다.

처음엔 빨래의 흰 가루가 세제인지 뭔지 몰랐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은 아직 어려 작은 집에 두고 남편과 나만 장례식장에 갔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어머님과 아버님이 오셨는데

어머님은 날 보고 "물 좀 아껴 써라. 우리 집에서 물 아끼는 것은 나밖에 없다! 난 한 컵으로 다 해결한다!"라며 돌아가셨다.

부모를 여읜데 대한 위로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는데 무슨 물을 아껴 쓰라는 말을 꼭 장례식장에서 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슬픈 사람한테 할 말씀이 그것밖에 없었는지....

우리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님한테는 물한컵만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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