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집 며느리로 산다는 것

21화. 세탁기고장

by 권에스더

독일에서 돌아올 때 엄마가 세탁기와 가스레인지를 사주셨다. 그때는 독일 세탁기가 좋다고 소문이 나고 가스레인지는 이삿짐이라 싸게 사 올 수 있어서였다. 이삿짐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요즘은 가전이 우리나라 것이 최고가 되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어차피 장만해야 할 것들이라 엄마가 그리하자 그러셨다.


시댁은 집을 지어 이사할 때 어머님이 가전을 다 새롭게 장만해 들어가고 싶어 하셨는데 경제력이 좀 모자라 어머님이 아쉬워하셨다.

새집인데 헌 가전이 싫으셨던 것이다.


그러자 평상시 그리 효자도 아닌 남편이 어머님이 새 세탁기를 사고 싶어 하시는데 지금은 여력이 안되니 내가 사 온 걸 먼저 드려 쓰게 하시고

나중에 우리가 들어갈 때 어머님이 새로 사주시면 되니까 그렇게 하자며 나를 졸랐다.

난 싫다고 우리 엄마가 사준 것인데 왜 어머님을 드리냐고 반대를 했다.


시댁의 이삿날이 다가올수록 남편은 성화를 부렸다.

할 수 없이 세탁기를 드렸는데 어머님은 "너희가 아직 놀 때도 없고 처치 곤란해해서 내가 가져간다!"라고 하셨다. 사실 우리는 어머님이 두고 가신 헌 세탁기를 쓰고 있었다.

놓을 자리가 없어서 안 쓴 것이 아니고 새집 가서 쓰려고 놔둔 것이었다.

이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이것은 어머님이 자존심 상해할까 봐 남편이 잘한다고 한말 때문이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도 때가 되어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가 한참 살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님의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수리를 요청하자 수입세탁기인데 수입회사가 판 것이 아니라고 수리비며 출장비가 비싸게 나왔다.

"그 돈이 얼마인데~ 아이구 아까워라~" 십이만 원이었다.

옛날이라 크다면 큰돈이지만 솔직히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나를 보신 어머님은 "그때 내가 너희 형편을 봐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데 괜히 나만 손해 본다!" 하셨다.


세상에 진짜로 남편이 하는 말을 믿고 당신이 며느리와 아들을 배려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너무 당신 편한 대로 생각하고 억울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싸울 것 같아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못 하고 산 것이 많았다.

많이 참았다!

가정교육 못 받았다고 엄마가 욕먹을까 봐 그랬다!

능히 엄마를 욕하실 분이었으니까....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20화어느 집 며느리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