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담 소담 V

썩은 사과 한 개

by 권에스더

어린 시절 추석이 되면 엄마와 식구들은 열심히 송편을 빚었다. 그때는 추석 전 날이 학교를 갔다가 오전수업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에 오는 대로 손을 씻고 송편 빚기에 참여했다. 오빠들은 주전자 모양도 만들어놓고 코끼리 송편도 빚어놓았다. 그래도 아무도 아무 말 안 하고 웃었다.

송편이 좀 빚어지자 엄마는 솔잎을 놓고 쪄서 참기름을 발라 우리 입에 넣어주셨다.


송편을 다 빚어야 문 닫기 직전의 동대문 시장에 가서 엄마는 싼값으로 우리들 옷을 하나씩 사주셨다. 우리는 명절에 새 옷을 입고 이웃 간에 혹은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선물을 하며 정을 나누었다.


어린 시절은 설탕과 기름이 귀해 설탕 4kg짜리 선물을 받아도 뿌듯해했다. 없으면 갓 빚은 송편이리도 보냈다. 주로 정성을 보내고 아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선물을 나누었다.

없지만 정겨운 모습이었다.


생활이 좀 나아지자 과일이나 고기를 선물하기 시작을 했다. 선물의 가격과 크기가 커지니 배달이 오기 시작을 했다.


사과나 배 한 상자 귤 한 상자를 받아도 기뻤다.

선물을 많이 받는 집은 사과 상자 배상자가 싸였다. 그래서 빨리 풀어보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선물로 받은 사과 상자에 썩어가는 사과가 하나가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차일 필하고 나 두었다가 열어보니 사과상자 안의 모든 사과가 썩은 적이 있었다.


배는 하나가 병들었어도 다른 배들은 괜찮은데 사과는 왜 이런 것일까?


사과는 바나나와 더불어 좀 특이한 열매이다.

식물에는 과일을 성숙하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 이름이 에틸렌이다.

이 호르몬이 나오면 과일이 익는다. 이 호르몬은 가스상태라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에틸렌에 닿는 과일은 다 익기시작하고 많은 양에 노출되면 썩기 시작을 하는 것이다. 또 익은 과일들도 이 호르몬을 분비하니 주변과일이 다 썩는 것이다.


사과 상자 안의 썩은 사과 한 개가 모두를 망치는 것이다.

초록색 바나나에 까맣게 변한 바나나를 곁들여 놓으면 초록색은 금방 노랗게 익는다.


옛날 리어카에서 과일을 팔던 아저씨들이 카바이드로 이 에틸렌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덜 익은 감도 익혀 팔았다. 카바이드로 익힌 것은 나쁘다고들 했었는데.... 맛도 없었다.

그땐 그것이 호롱불이자 과일 익히는데도 쓰였다.

요즘은 호롱불 리어카 카바이트는 낯선 단어가 되었다.


요즘 선물은 달라졌다.

있는 사람들은 현물대신 상품권을 주고받는다.

원하는 것을 사시라고....


정치인들은 더 달라졌다.

정치인들이 선물로 사과 상자 한 개를 보냈다면 그것은 엄청난 돈을 주었다는 뜻이다. 우리 시절처럼 사과상자에 진짜 사과가 있지 않고 다른 것이 들어있다. 그들의 선물은 썩을 염려가 없지만 그들의 선물은 우리 사회를 썩게 한다. 썩은 사과보다 무섭다.


그런 선물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썩은 사과 대신 사회를 썩게 할 돈다발이 가득 들어있다.

썩은 사과는 사과만 썩게 하지만 정치인의 사과상자는 나라를 썩게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담 소담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