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많이 사랑합니다.
지적이고 신체적이고, 예술적이며 정서적인 부분까지 골고루 아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별로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매일 가야 하는 학원은 영어든 미술이든 태권도 든 마찬가지입니다.
더하고 덜한 차이가 있을 뿐 즐거워도 학원은 그저 해야 하는 숙제일 때가 많습니다.
그 안에 공통적으로 있는 건 지시와 가르침이고 거기에 있는 동안 아이는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의 시간보다 지시받고 따라야 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꾸 지쳐갑니다.
질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성과 주도성, 사고력과 연결되는 키워드로 질문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부모는 집에서 아이의 생각을 이끌어주기 위해 질문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 밑에는 아이의 생각을 이끌어 스스로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새로운 것을 해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램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가 질문을 싫어합니다.
귀찮고 번거롭고 때로는 짜증스러워 하더라고요.
최근 김종원 작가님의 "부모의 질문력"을 읽으면서 저는 제 질문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왜 짜증을 내는지 알겠더라고요.
아이에게 제 질문이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질문은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야 하는 숙제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무엇을 잘못해 놓았을 때 저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00야, 이거 왜 이렇게 했어?"
저는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질문 형식으로 나무라기 시작한 겁니다.
당연히 아이는 뭔가 야단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분위기에서 나오는 태도를 보입니다.
자세는 차렷하고, 목소리는 작아지고요.
아이 입장에서 이런 질문은 말로 대답해야 하는 숙제인 거고, 그저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고 혼나는 시간일 뿐일 겁니다.
이미 아이가 뭔가를 잘못하거나 실수한 상황에서 질문은 나무라기 위한 시작일 뿐일 때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했어?"
"봐 이렇게 하니까 어떻게 됐어? "
"그렇지.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지? 그러니까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지?"
들여다보면 어디에도 아이 생각이 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상황은 벌어져 있고, 아이는 그 상황과 엄마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뿐입니다.
그러면 이 질문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왜 이렇게 됐어?"입니다.
이 질문에 아이는 그렇게 된 이유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게 됩니다.
"너는 그런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된 거네.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질문에 아이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00때문에"
여기서 생각을 더 확장해 줄 수도 있지만 핵심은 질문의 방향입니다.
아이가 한 행동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묻는 거지요.
"왜 이렇게 했어"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됐어"라고 물으면서요.
이 질문은 사실 엄마의 마음도 누그러뜨려줍니다.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묻는 엄마 마음은 이미 아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왜 이렇게 됐어"라고 물으면 엄마의 마음이 아이의 생각, 이유를 향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부모의 질문력을 읽으면서 제가 깨달은 건 좋은 질문, 생각을 깨우는 질문을 하기 전에 질문에 대한 인식을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겁니다.
저의 저런 질문이 아이 입장에서는 아주 공격적이고, 다소 폭력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걸 생각 못 했더라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어긋난 사랑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아이는 이제 스스로 옳고 그름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제가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적인 부분은 학교와 학원을 통해 채워가고 있고요.
그러니 부모인 저는 교훈이나 가르침보다는 아이와 생각을 나누고 그것을 펼치는 유희를 좀 즐겨야겠습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것도 아이가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기 보다 스스로 즐겁게 자기 길을 찾아갔으면 하는 거니까요.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움의 진정한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다."
제 사랑이 아이의 길을 막고, 아이의 어깨를 짓누르지 않도록 제가 아이를 바르게 봐야겠습니다.
제 질문이 아이에게 공격이 아닌 유희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공부하고 저를 돌아보면서 성장해야겠습니다.
부모의 질문력이라는 길잡이가 있으니 잘 찾아갈 듯합니다.
아이의 성장에, 부모인 저의 성장을 맞춰가야겠습니다.
결국 사랑이 모든 것을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