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내 삶은 뿌리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보다 남을 존중하고, 나를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했던 사람이었어요. 그게 희생이고, 봉사라고 착각하면서요.
우울증을 경험하고 삶을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건 나를 비난하는 제 자신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계속 나를 비난하니 제 안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뭐가 문제인지 모른 채 무작정 그 비난의 말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비난만 하지 않아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비난의 말은 거부한다고 멈추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반박한다고 사라지는 말도 아니었고, 모른 척한다고 나아지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비난을 지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밉고 싫은 나를 사랑하라니!
처음에는 비난의 상황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습니다.
고민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그런 내 모습에 대한 마음이 열리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마음이 열리면서 미운 나, 부족한 나를 마주할 힘이 생겼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보낸 후에는 그런 내 모습을 안아줄 수 있게 되었고요
나 자신과의 서툰 사랑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었습니다.
서툰 사랑에는 그 사랑이 단단해지는 시간 필요했고, 그 단단함은 결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내가 미워질 때마다 이런 나도 사랑하겠다는 결심, 이런 내 모습도 괜찮다는 결심이요.
결심하지 못하는 순간의 한숨과 좌절이 자양분이 되면서 저의 결심도 조금씩 자랐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과거에 없었던 자존감이 제 마음의 중심처럼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내가 괜찮은 내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자존감은, 내가 초라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안된다는 그 순간에 나를 믿으면서요.
자존감을 높이고 싶으시다면, 아주 사소한 일에서라도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마세요.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 나를 안아주세요.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면서요.
어른의 자존감은 그렇게 자기 스스로 세워가야 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