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상처가 세상을 왜곡한다.

by 셀프소생러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왜곡시키고, 관계와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시선을 바꾸는 일이며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경험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 되고, 성인이 된 이후의 감정 반응과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누군가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상황의 분위기만으로도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 현재와 뒤섞여 버린다. 실제보다 과도하게 두려워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억눌렸던 감정을 갑자기 폭발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결국 “나는 왜 이럴까?”라는 깊은 자기불신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다.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몇 살이었는지, 어떤 이유로 아버지께 그렇게 크게 혼났었는지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되는 것이 있다. 어린 나에게는 산처럼 컸던 아버지의 실루엣과 무서웠던 눈빛, 그리고 하늘을 쪼개는 천둥 같은 큰 목소리였다. 그날의 상황은 잊혔지만, 그때의 무서움과 떨림은 마음에 남아 사람과 상황을 해석하는 흔적이 되어버렸다.


자라면서 나는 큰 소리에 취약한 아이가 되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누군가의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듣게 되면 남몰래 마음이 움찔거렸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경계심도 생겼다. 눈빛이 강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피했고, 누군가의 날카로운 소리에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건 내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의 원인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기준은 관계에서도 문제를 만들었다. 친구의 화난 표정 그시절 아버지 표정과 비슷하게 느껴지면 빠르게 사과하며 상황을 피하려 했고, 가끔은 반대로 억눌렸던 감정이 갑자기 터져 필요 이상으로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대체로 착하지만 가끔 욱하는 아이”라고 했다. 상황이 어긋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책망했고, 상처와 자책 사이를 오가며 점점 나를 믿지 못하는 자기불신에 빠져들었다.


상처는 이렇게 세상을 왜곡하고, 건강한 소통을 방해한다. 때로는 스스로를 가두는 심리적 고립을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이 공격처럼 느껴지고, 남들은 괜찮은 일에 나만 유난히 상처를 받는 이유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결국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 한,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치유란 상처로 인해 굳어진 왜곡된 시선을 부드럽게 바로잡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 마음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보살펴주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부드럽게 바꾸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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