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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일, 나만 할 수 있는 그 일.

by 셀프소생러

타인에게 무너진 기대는 남편과 아이에게로 옮겨갔지만 그들도 결국 타인이었기 때문에 내 기대를 채워줄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없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20대 시절에는 봉사하고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뵙는 요양원 봉사활동도 하고, 방학을 맞은 섬지역 아이들을 위해 캠프 활동을 꾸려 캠프를 다녀오기 하고, 24시간 아이들을 케어하는 그룹홈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모이고, 함께하고, 나누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컸던 그 시절에는 단순히 남을 돕는 일을 타인을 위한 희생이나 봉사로 한정 지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정말로 내가 필요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과 거기에 내 삶이 없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주변의 좋은 말과 좋은 반응에서 내 삶의 의미와 내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계가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알기 전까지,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질없음을 알게 된 자리에는 공허함과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어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관계 안에서 본다면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모습도, 아이도, 남편도, 남도 결국 타인일 뿐이었습니다.

타인에게 무너진 기대는 남편과 아이에게로 옮겨갔지만 그들도 결국 타인이었기 때문에 내 기대를 채워줄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바로 나, 정확하게는 내 마음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은 마음에서 나오지요.

그러니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어지럽고 불안한 내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처럼 어지럽고 불안한 사람이었으니 관계가 어지럽고 불안한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관계를 일으키는 중심, 그건 내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관계도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서로를 주저앉히고 있었던 관계들이 눈에 보였고, 내가 만들어내는 불편한 관계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이 눈에 띄지 않거나 크게 불편해지지 않는 방법으로요.


그때 비로소,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게을리해서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제 입장에서는 특히 더 와닿았습니다.


지금도 일상에서 정신적, 감정적으로 어려운 순간을 지날 때마다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종종 깨닫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살피는 일, 남이 알아주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내 노력을 알아주는 그 일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늘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일들이 참 많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는 결과에 따라 열심히 했던 내 마음과 노력의 가치를 쉽게 잊어버리게 되지만, 저는 설령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내가 열심히 하고 노력한 그 사실을 적어도 나는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나의 좋음을 발견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또, 그래야 행복할 수 있고, 자존감을 높여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없는데 주려고 하면 그럴수록 내 에너지는 떨어지고 머지않아 번아웃과 같은 정신 고갈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저처럼 우울이 깊어지거나요.

나를 돌보는 일을 꾸준히 해서 편안해지면 그 결과로 남에게 편안함을 전할 수 있고, 나를 돌보아 내 마음이 따뜻해지면 또 그 결과로 남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 나와 남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돌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돌봄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따뜻한 사랑도 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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