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나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나의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더 쉽게 외면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보이지 않기에 더 쉽게 외면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누구보다 나에게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 그것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묻혔다가 나중에 더 추한 방식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 말을 들으면 부정적 감정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긍정적 감정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반면, 부정적 감정은 그렇지 못해서 많이 억누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과거 경험을 통해 억눌린 부정적인 감정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 후, 지인들과 함께하는 모임 자리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의견이 충돌이 있어 분위기가 불편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암묵적인 긴장이 흐르던 그때 한 사람이 그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어색한 농담을 던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웃고 넘길만한 말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과하게 큰소리로 웃고 말았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좋아해?"
"글쎄, 오늘따라 저 말이 너무 웃기네. 나만 그런 거야? 하하하."
어색하긴 했지만 뭔가 후련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내 마음에 쌓여있었던 불편을 과한 웃음으로 날려버렸다는 것을요.
억눌린 불편감은 지나친 웃음이 되기도 했습니다.
비단, 어른인 저만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아이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한껏 기분 좋게 "엄마~" 하고 나온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힘들고 속상한 날일수록, 오히려 아이는 더 밝게 웃고 달려 나오곤 했습니다.
아이도 저처럼 힘든 마음을 과하게 기쁨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감정의 폭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에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힘든 감정만큼이나 좋은 감정에도 적당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감정은 계속 변하는데, 좋다고 한껏 좋아하면 좋지 않은 감정이 왔을 때는 그만큼 큰 폭으로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감정이 내 안에서 널뛰기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혼란스러워지기도 하고요.
감정은 에너지입니다.
오고 가는 감정의 폭이 커지면 그 감정을 느끼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기 때문에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다 지나가는 거다."라고 말하면서 감정 사이에서 내 중심을 잡으려고 합니다.
감정의 진폭이 적을 때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감정에 휩쓸리는 내가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내 감정의 관리자가 되어주어야겠습니다.
나는 내 감정의 가장 좋은 관리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