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광기 사이는 불연속 정수비였을까?>
1.
사장은 일전에 개인적으로 자신이 일구는 밭에 마늘을 수확하는 기계를 개발하려고 구상 중인데, 그 디자인을 나에게 요청한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단지 내 전공이 그림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뭐 본인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원하니, 그의 월급을 받는 직원 입장인 나로서는 어차피 업무시간 중에 하라는 것이니 굳이 마다 할 이유도 없어서 그의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구현해 줬다. (라기보다는 내 쪽이 조금 더 창의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런 류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의 구상(?)을 그리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는 과연 이게 가능한 설계인가? 모르긴 몰라도 99.9%쯤 실패할 것 같은데…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어딘가 어리숙한 자세로 세상을 대하는 사장의 아들인 과장과 그리고 과장과는 다르게 과하게 세속적인 팀장도 역시 사장의 실패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비극적이지만 그들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사장의 일에 끝내(?) 동참하는 나로서는 그의 구상도를 그려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일종의 실천이성적인 양심에 근거한 고민 따위는 1도 하지 않은 건, 사실 그의 열정치가 어쩌면 광기에 더 근접해 있다는 예감을 이미 다각적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가 저렇게 신나게(신날수록 위험한;;) 내달리듯 일에 속도를 낼 때 자칫 딴지를 걸었다가는 과장을 포함한 전 직원 모두가 짐승처럼, 아니 짐승이 된 그가 질러대는 고함을 들어야 할 이유를 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찾아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것이 팔순에 가까운 어르신에 대한 예의라고 해두자면 말이다.
그런 성격 때문에 그는 언제나 친구가 없었고, 친구가 없기 때문에 팔순이 넘어서도 이미 아들에게 물려준 회사에 올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언제나 외롭다.
(아... 그 머신(?ㅋㅋ)이 어떻게 되었냐고? 후기를 말하자면...
어떻게 해봐도, 그 어떤 작업방식으로도 리사이클링 불가. 아마 하느님도 그 머신에게 어떤 소명도 내려주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해본다.)
2.
타는 목마름 같은 것이었을까…? 언제나 내달리듯 소처럼 일하던 직원이 곧 회사를 그만둔다.
이유는 “몸이 점점 나빠져서...” 라는데,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결국 이런 식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될 거라는 걸.
열정과 광기 사이를 넘나들며 일하는 자는 언제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눈으로 보는 다른 직원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일을 더 적게 하거나, 나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게 된다. 그럼에도 같은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의 내면에서부터 불만과 허무함을 싹 틔우며 무럭무럭 자라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그가 일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고야 마는데, 그에게 있어 일이란 마치 ‘이불속으로 침입한 지네를 해치우듯이 논리적 해석에 보다 앞서서 쏜살같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가진 권위자가 아니었을까.라는 해석을 갖게 한다.
아무튼 그만큼 전사같이 일을 해치우는 데 있어서는 분명 광기를 가진 자로서, 스스로의 의지로는 자신의 광기를 견뎌낼 수 없기에, 그는 언제나 책정된 것 이상의 일을 해내거나, 때로는 거의 사장으로 빙의되어 있는 저 자신을 스스로 막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오직 사장만이 좋아할 그 직원을 다른 직원들은 좋아할 리가 없으니, 이번에 그가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나니 사실 나도 마음의 동요가 있다.
이를테면 ‘그가 없음으로 인해 좀 더 나은 회사생활이 될지도 몰라.'라는?
물론 그만두는 그 직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그 나름대로도 많이 힘들었을 거란 약간의 공감은 하지만 말이다.
예컨대 “일은 내가 더 많이 하는데, 왜 월급은 똑같이 받지.”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왔지 않았겠는가. 제발 그렇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냐.라는 여러 번의 충고에도 말이다.
결국은 안 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그에게 이 말 한마디는 해두고 싶긴 하다.
당신이 힘들었던 건 “내가 받은 것은 월급이었고, 그대가 받은 건 새경이었기 때문이야.”라고…
그의 광기와도 같은 열정이 스스로의 월급을 새경으로 만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