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궁금한가>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매 순간 결정해야 지점들이 생긴다.
상품의 품질 여하에 따라서 내 주관적 판단으로 다음 공정에 통과시켜야 할지, 아니면 걸러내야 할지…
어느덧 경력이 쌓인 만큼 상사가 부재중이더라도 무리 없이 결정을 하고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스스로에게 흥미로운 점이 생겼다.
분명 나는 상사 없이도 충분히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업무적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상사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업무적 결정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상사가 부재중일 경우에는 충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상사가 돌아오면 두 번 세 번 망설이는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질문은 시작된다.
‘왜 그의 존재 여부에 따라 나의 결정력은 달라지는가?’
사실 답은 권력관계라는 간단한 것이어서 긴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내가 궁금해진 지점은…
[나는 왜 질문을 던지는가?]
즉 ’ 물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이것에 대하여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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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물음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저 사람에게 호감을 받으려면 어떻게 행동하면 좋지?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지?
각자 직면한 상황과 성향 등에 맞는 질문을 가질 것이고, 삶을 소비하며 그 물음의 대한 답을 찾을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삶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내가 조금 더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질문은 어디에서 발생하지?, 나는 무엇을 궁금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는 물음을 왜 던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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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 세트처럼 구성되어 있는 ‘물음과 답’의 관계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답’은 직접 사고를 하고 결론을 찾거나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능동적 속성을 가진 반면, ‘물음’은 어딘가에서부터 발생하는 수동적 속성을 가진다.
즉 ‘답’은 직접 찾거나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경향성이 강하지만, 물음은 내면에서부터 발생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물음은 어떻게 발생할까?
나 이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의 세상 속에 사는 것을 가정했을 때, 대체 나는 어떤 물음을 던질 수 있을까?
1. 나는 왜 혼자인가?
2. 세상은 왜 허공일까?
3. 허공이 아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질문을 적어보았지만, 적절한 물음은 아닌 것 같다.
1번 ‘나는 왜 혼자인가? 의 경우… 허공의 세상에서는 나 이외에 다른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었을 텐데, 둘 이상의 개념을 인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2번 3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허공이 아닌 세상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허공이 허공인지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허공이 아닌 세상은 상상 불가해 보인다.
‘허공(虛空)’이라는 개념의 파생은 반대의 개념인 ‘만공(滿空)’에서부터 인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마도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행위의 발생 방식은 ‘없음’에서부터가 아닌 ‘있음’에서부터가 순차적일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드는데..
하나의 존재가 선행적으로 실재했을 때 그 존재의 비교적 가치로서 그 존재보다 좋거나 나쁨의 가치가 후행적으로 발생되거나, 해당 존재가 만약 부재했을 경우를 가정해 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물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는 것은 물음을 하기 직전까지의 시간 동안에 어떤 경험들이 누적되었기 때문에 그 누적된 경험들이 동력이 되어 다른 물음들을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흐름으로 가정하면 우리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의 진의는 사실 어떤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다음 단계의 물음에 대한 선행적 경험이 될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상사의 부재여부가 나의 업무적 결정력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내가 바로 권력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도 해당 지식에 대한 물음이라는 경험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한 답을 낼 수 있었던 것이고, 그 후에 내가 권력관계라고 스스로 문답하고 그 의미에 관하여 지금처럼 글을 쓰는 행위의 발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2차적 물음 갖게 된 것도 하나의 지식이 다음 단계의 물음의 단초가 되는 경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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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은 발전할수록 단순해지며 근본에 가까워진다.
예컨대 내가 최초 권력관계라는 답을 가지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특정 상황에서 인간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권력관계라는 답을 가지게 된 것이고, 그다음에는 나는 왜 그러한 지식을 얻고 싶어 했는지, 즉 권력관계라는 것이 나는 왜 궁금했었나? 라며 조금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다음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갈 것이다.
점차 액자 속의 액자를 빠져나오듯 메타적인 물음이 계속될수록 질문은 단순해지며..
데카르트가 남긴 말처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매우 단순한 결론은 그토록 수없이 많은 물음이 쌓인 끝에 도달된 결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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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우리는 물음을 가져야 하지?
사실 주변에 이런 물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피곤해할 것이다. (왕따 1순위가 되겠지..)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물음 없이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고, 눈앞에 주어진 세상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존의 안위에 있어 앞으로 발생 가능한 정도의 물음만 가져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근본에 대한 물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쉬운 예로써 과학의 발전과정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물리적인 힘의 작동원리에 대한 물음은 더욱더 근본적인 양자역학에까지 다다랐고, 이미 138억 년 전부터 존재해왔던 우주의 질서와 천체의 작동방식에 대한 인간의 물음은 인류를 지구 밖으로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하였다.
의학적 분야 역시도 이미 인류의 기원은 의학보다 아득할 정도로 먼저 존재했지만, 나중에 발생한 의학적 물음으로부터 보다 깊은 인류의 근본으로 다가가며, 생명연장을 이룰 수 있었고..
종교와 철학 역시 인간의 존재적 근본에 대한 내면적 물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찬란하게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어릴적부터 학교를 다니며 문학, 역사, 예술, 과학, 철학 등 공인 된 지식을 비롯하여 나의 삶과 관련 없어보이는 분야의 지식들도 쉽게 터부시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모든 지식들이 자양분이 되어 스스로 물음을 생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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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인 시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처음이 아닌 시간의 중간에서 태어난다.
중간에서 태어나 앞만 보며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은 뒤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마치 영화를 중간에서부터 보듯이, 세상이라는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원하지 않던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본인이 잘못될 길에 들어섰는지 조차도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점검을 하고, 적어도 더 좋지 않은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물음을 갖고, 그런 물음을 갖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가 지식을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담]
살아가며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된다.
피곤하게 뭘 그런 걸 궁금해하냐고, 가끔은 왜 금기를 깨는 말을 하냐고...
물론 정말 몰라서 그런 물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활한 분위기를 위해 그런 질문은 내면에 고이 묻어두고 남들이 듣고 싶은 말들만 골라서 할 수도 있겠지만...
전통과 도덕은 왜 지켜야 하는지? 효도는 왜 해야 하는지? 왜 항상 친구와 주변인들에게 결혼을 장려하듯이 말해야 하는지? 왜 필요에 따라서라도 일본을 편을 들면 안 되지? 공산주의가 왜 나쁘지?
위에 대충 언급한 물음들은 실제 내가 경험적으로 일상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주제이다. 저것들과 관련된 흐름에 반기를 드는 듯한 물음을 하거나, 저 주제들의 근본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주변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고는 했다.
그래.. 전통과 도덕을 지키는 것, 효도를 해야 하는 것. 지키면 좋거나 살기 편리하거나, 적어도 대화할 때 부드럽게 흘러가는 건 잘 알겠는데...
그 근본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저 과거부터 그래 왔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별생각 없이 하나의 사상과 주제에 생각과 몸을 맡기는 게 나에게는 스스로 너무 무기력하고 납득이 안된다.
일단 전통과 상식을 지킬 때 지키더라도 대략 그 근본이라도 좀 알아보고 하자는 게... 그냥 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