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서>
일종의 조서처럼 진술하자면…
지나왔던 과거의 기억은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1.
시간이 일방향의 선형이라고 발음한다면, 지나쳐간 기억은 이젠 존재하지 않는 무렵이며,
언제나 같은 곳에… 빛바랜 책 속의 책갈피처럼 한없이 멈춰있을 것이다.
2.
어느 날 사진을 바라봄으로써 과거를 인화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장면으로서의 과거가 아닌, 그날 셔터를 누르던 사진사를 기억해야 한다.
사진은 장면만을 기록하지만, 사진사는 그날의 호흡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3.
어쩌면 성장해버린 존재에게 있어 기억은,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찬장 높이 숨겨둔 간식상자처럼 유폐되었거나, 처음 장화를 신던 날, 정신없이 뛰어든 웅덩이의 물방울처럼 사방으로 흩어져버렸고…
현재의 내가 가진 건 고작, 그날의 열락(悅樂) 외엔 방도가 없었다.
결국 모든 기억은 그렇게... 불구가 되어간다.
4.
두 눈에 당신을 버리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어느새 나는 새벽보다 옅어졌다.
결코 끝나지 않았어야 할 방황이 끝나가는 집 앞의 편의점에서 나의 손은 무참히 맥주를 들어 올렸고, 컵 속에 먼지를 담아 단번에 들이켜고 나니 어딘가 미스틱 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새하얀 장판 위를 기어가던 개미가 내 발가락을 두드렸고, 나는 그 개미를 밟아 죽이려 했지만 개미는 나보다 더 컸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개미가 지나간 장판 위로 이불을 깔고 누웠을 때, 천장에 어지러이 나열된 벽지의 문양들이 기어코 현기증을 일으켰고, 나는 이불을 박차고 주저앉아 구역질을 해댔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면, 마치 죄 진 기억을 가진 기분이다.
5.
당신만을 위한, 하지만 당신만이 읽지 않을 문장으로 채워졌을 이 글의 나약한 의지만이, 갈피를 잃어 글자의 행간을 떠돈다.
기억은 온전히 소유되지 아니하고,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모든 기억은 끝내 갈라파고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