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마렵거나, 아무 때나 쓰인 메모들의 파편
22년 12월 22일
그 시절.. 그러니까 나도 도시의 호모 사피엔스였을 때, '스타벅스 골드회원'이던 시절이 잠시 있었는데.
기억으로는 당시 스타벅스가 진행했던 프로모션 중에서 골드회원 카드 발급 시, 카드에 이름을 지정하고 그 카드로 결제하면 매장 직원이 커피를 줄 때 카드에 지정한 이름으로 호명해 준다는 서비스가 있었다.
당시 약간은 짓궂은 유행이 있었는데, 이름을 일부러 민망하게 설정하여 매장 직원으로 하여금 고객을 부르기 부끄럽게 하는 것인데...
그 후 회사가 스타벅스가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갔기도 했고, 그다음에는 시골로 귀촌도 하여 오랜 기간 스타벅스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왔다.
우연히 도회지를 갈 일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오랜만에 스타벅스 커피를 먹어보자는 마음에 앱을 설치했다.
앱 설치 후 로그인을 하고 보니..., 당시 나의 젊고 어린(?) 호기로 지었던 이름이 세월을 견디며 머물러 있더라.
'탕수육 시키신...'
탕수육 시키신 고객님이라니...
그랬구나. 민망한 것은 직원이 아니라, 바로 나였구나.
역시 살아볼 일이다.
아 민망한 젊음이여, 부끄러운 시절이여~
22년 12월 24,25일
[기록으로서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소회]
1.
사실 크리스마스 전에는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를 지나는 도중에는 지금이 크리스마스인 것을 잊었다.
이 날 우리 집은 김장을 했는데, 하루종일 배추를 절이며 김장 준비를 한 보상으로 아내에게 저녁에 치킨을 사러 가자고 하니, 과연 치킨이 남아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아줌마가 무슨 소린가 "치킨집이니 치킨이 있는 거지."라고 넘겨 듣고서 읍내의 치킨집까지 설렘을 안고 액셀을 밟았다.
치킨집에 도착하여 계산대 앞에 서니 사장이 말했다.
"주문하면 1시간 반 걸리는데 괜찮으실까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치킨집 계산대 앞에서 느낄 수 있었다.
2.
김장하는 날 아침, 아직 자고 있는데 장모님으로부터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뭐냐...? 간밤에 좀 추웠기로서니 그 정도에 얼 것은 아닌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가서 확인해 보니, 물탱크 안에 물이 다 떨어지고 그나마 바닥에 고여있는 물 마저 얼어있었다.
탱크 안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꼭지가 얼어버리니, 물 공급이 안돼서 저장된 물만 사용되다가 그마저도 소진되고 물이 멈춰버린 것이었다.
일단 직수로 나오는 수도가 있어서 배추는 그걸로 절이고, 모든 게 정상이었다면 중간에 쉴 수 있는 시간에는 수도를 복구하는데 소모해야 했다.
드라이어를 가져다가 녹이고, 길고양이가 스크래치 해서 뜯어놓은 동결방지용 배관 피복도 새로 사다 두르고 하니, 하루 해가 거의 기울어갔다.
그렇게 나를 쏟아부으니, 오후 5시쯤... 드디어 다시 물이 나왔다.
그 순간 머릿속에 저절로 '유레카', '심봤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순간적으로 이게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인가 헷갈려서 발음하진 않고 그냥 아내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만을 전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냥 뭐가 됐든 쾌재를 내지를걸.
그랬으면 그 순간의 기분이 더욱 크게 상승했을 텐데.. 하며 다소 아쉬워했다.
3.
언제나 김장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면, 장모님과 내밀한 신경전을 벌인다.
나는 당연히 배추 포기를 줄여야 하는 입장이고, 장모님은 언제나 아쉬워하는 몸짓과 표정으로 포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신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김치를 많이 담가야 할 명분이 없어 보였는데, 아내의 외삼촌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니까 글쎄... 혼자 밥을 차려드시는데(외삼촌(=남성)에게 있어 혼자 밥을 차려 먹는다는 건, 곧 밥이 아닌 라면을 끓여드신다는 것) 김치가 없어서 자기가 가서 좀 도와줄 테니 본인 먹을 김치(당연히 라면용 김치일 것이다.)까지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선, 연세가 일흔 넘은 분이 와서 도와주시겠다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가중치를 더 올린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는 것이니..
나와 아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그가 돕지 못하도록 말려야 하는 것.
근데 좀 그렇다.
어째서 혼자서는 라면이 아닌, 리얼 밥을 차려먹지 못하는 것도 이해 못 하겠고(진정 라면이 먹고 싶은 것도 아닌데도...), 혼자 밥을 차려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라면만 주로 먹게 되는 상황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이해 해주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나중에 회사 여성 동료들에게도 이 지점에 대해 물어보니, 자기 남편들도 대충 그렇다고 하더라.
혼자서는 리얼 밥을 잘 안 챙겨 먹거나, 아니면 본심과 다르게 어쩔 수 없듯이 라면을 먹거나, 아님 그냥 굶거나.
그저 먹고 싶은 밥 챙겨 먹는 게 대체 뭐라고.
아님 사서라도, 햇반이라도 먹던지.
증말 많은 남자들.. 참 잘 못 컸다.
여하튼 이렇게, 이런 이유로... 또다시 사야 할 배추는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