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고 Mar 05. 2023

비망록(4-2) 스프레자투라(Sprezzatura)

<'세련됨'이란 무심히 드러나는 것>

23년 2월 8일 저녁 (오전에 이어서 쓴다.)


 '스프레자투라'는 비단 패션이나 외형적인 것에만 한정하는 개념은 아닐 것인데.. 

가령 다수에게 자신의 다정하고 선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아이를 안고’  홍보용 사진을 만드는 과정을 가정해 본다면, 당연히 고려해야 할 많은 사항들이 떠오른다.

홍보를 하려는 당사자의 성별과 외향적 특성에 맞게 같이 사진 찍을 아이의 성별과 나이, 체형 역시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고, 중요한 건 누구나 홍보를 위한 사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일상적이며 자연스럽게 찍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다정하고 선한 이미지의 개념은 사회에 발을 딛기 전, 가정의 범위 내에서 유년기를 거치며  소양된 '인성'으로서 받아들이지,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이식되는 도구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기 때문인데..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흔히 선거철마다 보게 되는 홍보전단에서의 사진들은 주체자의 인성과 관련하여 최대한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고심하여, 짝을 이루어 사진을 찍어야 하는 아이와 주체자의 관계성이 적절한지, 또한 사용하는 조명이 자연광일지 인공광일지, 빛의 방향성에 따라 그림자가 지는 방향까지도.. 일련의 외적인 부분마저도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일 게다.


그렇게 수많은 사항들을 고려하고, 갖가지 포즈를 취해가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도, 기껏 최종 선택하는 사진은 그저 아이와 내가 다정하게 바라보며 웃는 흔한 사진 한 장 정도겠지만, 그렇게 '세련됨'이라는 것은 숨겨진 무대 뒤의 노력에서부터 길어 올린다.


많은 것을 고려한 ‘복잡한 단순함’ 

이를테면 애플의 감성과 단순한 디자인을 외치며 많은 대중들이 추종하는 이유는 그 심플한 멋을 내기 위해 무대 뒤편에서부터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고초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애플 만의 심플한 멋이라는 게, 단지 맨질맨질한 직육면체의 형태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그 자체가 엄청난 검증의 역사성을 가졌기 때문일 텐데..

비슷한 예로써  ‘신의 존재를 믿는가.’라는 테제에 대하여, 교회 옆자리에 앉은 사람으로부터 신은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믿는 것과, 자신이 직접 삶의 환희와 고통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경험한 후 믿게 되는 신의 존재와는 동일한 결괏값임에도 그 본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과도 같은 논리다.


따라서 '세련됨'은  단순히 외형적 형태만 구축하면 되는 것이 아닌, 시대의 맥락과 공감력, 그리고 미적 감각이 만났을 때 발현된다. 


비근한 예로서

흔한 조폭드라마의 클리셰로 집단 결투에서 우두머리가 앞장서서 나가려 하면, 아래 부하가 우두머리를 말리며 한마디 한다.

“형님이 가오가 있는데… 직접 나서시면 어떡하십니까..”

자주 보는 장면이긴 하지만, 조폭의 우두머리가 가오를 잡는 방식이 어딘가에 명문화 되어있는 것도 아닐 터, 그런데도 누구나 저 말에 공감을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회사에서 말단 직원이 저지른 실수에 대하여 회장님이 직접 나서서 해당 직원을 질책한다면?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회장님들은 사람 좋게 허허 웃으며 ‘직원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전언(?)만 남기고 자리를 뜨는 상황을 더 자연스럽게 연상할 것인데,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과장이나 부장보다도 회장이 한 발 더 나서서 실수한 직원에 대해 바로잡고자 하는 욕망이 강할 것이라는 사실을.. (회사가 지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머릿속에는 무릇 회장이라면 말단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질책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해온 것처럼 노골적일수록 촌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일 게다.


누구라도 조폭의 우두머리나 회장이, 이끄는 집단을 훌륭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가장 강하게 가졌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들이 노골적으로 나서는 모습 또한 촌스러운 행위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를 경계하는 것일 게다.

어디서 들었던 것처럼, 보스가 자기 조직의 운영비를 '300만 원'이나 냈다고 하여, 부하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영역까지 참견하는 행위도 세련된 행위가 될 수는 없겠지. 

또는 기억에 언젠가 비싼 호텔에서 하룻밤 묵는데, 쓴 만큼 뽕을 뽑는 일환으로 최선을 다해 기물을 더럽게 써야 한다며 자랑스럽게 권유했던 사람도..

이 얼마나 세련됨으로부터 멀지 아니한가? 자신이 돈을 썼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외부에 드러내야 한다는 그 어떤 적극적 호소의 의무감

많은 사람(대중)들은 세련됨에 대하여 별도의 공부를 하진 않지만, 세련됨이라 함은 집단 문화적 준위 속에서 발생하는 공통가치이며, 공통의 시야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적어도 최소 인원/전문가 집단이 동의해야 세련됨이 성립되는 것이지, 오직 홀로 주창하는 세련됨이란 과연 존재 가능할까?) 


미학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예술가는 아니기 때문에 예술에 관한 표현기술을 갖지 못했더라도, 예술가가 표현한 작품을 예술시장의 대중들이 어느 정도 공통된 수준의 시각을 가지고 가치 평가가 가능한 것도, 사회 전반에 공통적으로 공유되는 신파와 세련 사이의 간극을 구별하는 감각이 문명화된 삶의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체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프레자투라'는 그렇게 우리 생활 속 곳곳에서 드러난다. (용산의 한 곳 빼고..,)

매거진의 이전글 비망록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