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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오케스트라: 형제라는 인연

같은 하늘 아래, 다른 별을 가진 우리, 그리고 닮아가는 시간의 하모니


때로는 가장 가까운 거울, 때로는 가장 깊은 그림자


삶이란 참으로 묘한 관계들의 연속입니다. 그중에서도 '형제자매'라는 이름으로 엮인 인연은 더욱 특별하죠. 같은 피를 나누고, 같은 지붕 아래서 자랐지만, 때로는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느끼게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처럼요. 하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가장 깊은 경쟁자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애쓰는 듯 말이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찾아가며, 비로소 진정한 '나'로 성장해 나갑니다. 이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삶의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를 함께 연주하고 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비춘 우리 가족의 별자리


저는 예전에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형제자매 이론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수많은 이론들 속에서도 유독 이 이론은 제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죠. '형제는 왜 그렇게 다르게 자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그의 통찰은, 저와 제 형제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마치 어둠 속을 밝히는 등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수업 시간에 저는 이 이론에 대해 가장 열정적으로 발표했고, 교수님도 제 반응에 크게 기뻐하셨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부터 아들러가 말한 형제자매 간의 심리적 역동은, 제 가족의 별자리를 읽어내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아들러에 따르면, 형제자매는 각자 태어난 순서와 나이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성격과 역할을 갖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존재 이유'와 '영역'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심리적 위치와도 같습니다.


첫째는 때로는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책임감 있고 리더십이 강한 '작은 부모'처럼 자라기도 합니다. 그들은 때로 완벽주의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죠.


둘째나 중간 자리는 형제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들은 종종 조율자 역할을 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지키려 애쓰며, 가족 내에서 가장 유연하고 적응력이 강한 존재로 성장합니다.


막내는 가족 내에서 사랑받고 보호받는 위치를 누리면서, 때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성격으로 성장합니다. 그들은 때로 응석받이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예측 불가능한 매력으로 가족에게 웃음과 활력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아들러는 형제자매가 서로 다른 역할과 위치에서 경쟁도 하고 보완도 하면서 '심리적 형제의 란(亂)'을 형성해간다고 했습니다. 이 '란'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마치 넓은 강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처럼 서로 기대고 부딪히며, 그 안에서 각자의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고 가지를 뻗어나가는 성장의 공간인 것입니다.


우리 가족의 '란', 그리고 시간의 흐름


우리 가족도 그러했습니다. 7살 차이 나는 큰 오빠는 언제나 제게 든든한 기둥이었습니다. 묵묵히 가족을 지탱하며,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자애롭게 저를 이끌어주었죠. 3살 차이 나는 또 다른 오빠는 다정하면서도 자신만의 깊은 세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예술적인 감성과 독특한 시선은 제게 새로운 영감을 주곤 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썼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6살 차이 나는 여동생과 9살 차이 나는 막내 남동생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가족 안에서 자기만의 색을 찾아갔습니다. 여동생은 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했으며, 막내 남동생은 특유의 유머와 자유로움으로 가족의 분위기를 환기시켰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처럼 각자의 궤도를 돌았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은하계 안에서 서로의 빛을 주고받으며 존재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형제자매와의 관계도 놀랍도록 변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사소한 다툼도 많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부딪히는 순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겪는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힘이 되는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성장 배경을 가진 우리가 이렇게 맞춰 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성장의 시간이었다는 걸, 이제는 온몸으로 느낍니다.


아들러의 이론이 제게 준 깨달음은 단순한 심리학 지식을 넘어 삶의 깊은 통찰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형제의 란'은 우리 가족에게도 예외 없이 존재했지만, 그 '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함께 걷는 법을 배웠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기대며, 때로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면서 말이죠.


하나의 뿌리에서, 다른 길을 걷는 아름다운 동반자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가족과 형제자매 사이에서 겪는 작은 갈등과 성장의 순간들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어쩌면 당신의 형제자매는 당신의 가장 오래된 거울이자, 가장 깊은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당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당신의 모습을 비춰주고, 당신이 혼자서는 갈 수 없었던 길을 함께 걸어주는 소중한 동반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나무들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면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니까요. 삶의 오케스트라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며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가장 오래된 동반자들입니다.


요즘 문득, 나와 함께 자라온 형제들을 떠올리는 순간이 잦아졌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당신의 삶도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는 멜로디를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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