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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왜 아직도 날아오를까

중력을 거스른 비행, 애써 눌러둔 자유를 향한 무의식의 갈망


삶이란 때로 알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게 합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숨 가쁜 나날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문득 잊고 있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끼곤 하죠.


그 갈망은 때로 꿈이라는 신비로운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마치 현실의 중력을 벗어던지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날아오르고 싶은 무의식의 절규처럼요.



평범한 산책길, 언니의 한마디


그날도 언니와 저는 여느 때처럼 동네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 초여름의 바람은 싱그러운 풀 내음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익숙한 오후였죠. 우리는 말없이 나란히 걸었고, 제 마음속에는 그저 평화로운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골목을 돌고 돌아,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언니가 문득, 아주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듯 나지막이 말을 꺼냈습니다.


"나… 요즘도 하늘 나는 꿈을 꾸더라. 근데 왜 그럴까, 이 나이에도…"


저는 고개를 돌려 언니를 보았습니다. 언니의 목소리는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 같았지만, 그 뒤에는 묘한 여운이,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고단함이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꿈이라니, 얼마나 좋은 꿈이야?'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표정은 그 꿈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듯 보였습니다. 그 미묘한 표정과 목소리가 제 마음을 자꾸만 건드렸습니다.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도 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왜 이 나이에도 그런 꿈을 꾸는지 모르겠어.’

그 말은 마치 언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책장에서 찾은 단서


저는 무심코 책장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 이끌기라도 한 듯, 손은 자연스레 오래된 책 한 권을 향했습니다.

《꿈의 해석》 – 지그문트 프로이트.

대학생 시절, 심리학 수업에서 다뤘던 그 책. 수많은 이론과 개념들 속에서, 꿈이라는 신비로운 세계를 파헤치려 했던 프로이트의 통찰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낡은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저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언니의 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제 눈은 어느 한 구절에 멈췄습니다.


"하늘을 나는 꿈은 자유에 대한 무의식의 갈망을 상징한다. 이는 현실에서 억눌려 있거나 벗어나고 싶은 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언니의 말이 다시 한번, 아니 수십 번 더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왜 이 나이에도 그런 꿈을 꾸는지 모르겠어.'

언니는 그 꿈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 꿈은 언니의 무의식이 보내는 가장 솔직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무의식이 보내는 작은 비행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니는 늘 책임을 감당해온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니는 부모님과 동생들 사이에서 든든한 다리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가족의 대소사를 살피고, 언제나 먼저 나서서 희생하는 것이 언니의 역할이었습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자신의 몫을 다하며, 때로는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버거워도 늘 괜찮은 척, 늘 견뎌야만 했던 사람이 바로 언니였습니다.


언니의 삶은 마치 거대한 배의 돛대와 같았습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도 굳건히 서서 배를 이끌어야 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죠.

그런 언니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마음껏 가고 싶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것은 언니의 사전에는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하늘을 나는 꿈은 언니의 몸이 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니의 마음이 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라도 그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가벼워지고 싶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숨 쉬고 싶어서.

혹은, 누군가에게 "언니, 이젠 좀 쉬어도 돼요"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서.

그 마음이, 잠든 밤의 하늘을 날아다니며 작게나마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 산책길에, 저는 언니의 마음을 다 듣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언니의 고단함과 그 꿈이 가진 깊은 의미를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낡은 책 한 구절이, 제 마음을 흔들었고, 언니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작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꿈은 그저 스쳐가는 덧없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애써 눌러둔 감정, 현실의 제약 속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의 언어였습니다.

잠재의식이 보내는 가장 솔직한 신호이자,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내면의 깊은 울림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차례


그날 이후, 저는 꿈을 좀 더 귀 기울여 듣기로 했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고 넘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꿈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궁금해하며 귀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단순히 '꿈'이 아니라 '마음의 목소리'이니까요.

그리고 그 목소리는, 어쩌면 누군가가 꼭 들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요.


언니, 다음에도 그런 꿈꾸면, 그냥 마음껏 날아봐.

꿈에서라도 자유롭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현실에서도 언니의 마음이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기를.

그때는 내가 언니의 가장 든든한 바람이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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