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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한 그릇, 아이스크림 하나

초복의 식탁에서 마주한 젊음과 늙음


식욕 너머로 마주한 시간의 얼굴들


여름의 절정, 삼복 중 첫 번째 날인 초복입니다.

따가운 햇살이 여름의 기세를 알리던 날, 미사를 마치고 성당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초복 기념으로 삼계탕을 판매하고 있었고, 딸과 나란히 앉아 각자 한 그릇씩 주문했습니다.


뜨끈한 국물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식욕을 자극했지만, 며칠째 이어진 두통 탓인지 속이 미식거려서 몇 점의 닭고기만 겨우 집어 먹고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딸이 식사하는 동안 저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딸은 달랐습니다. 닭고기 한 점, 찹쌀 한 숟갈, 국물 한 모금까지 야무지게 해치우더니,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워냈습니다. 배가 부르니 얼굴에 화색이 돌고, 한결 편안해 보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한창이던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생기 가득했던 그때의 저 말입니다.



후루루 내려가던 그 시절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딸이 옆에서 하나를 집어 들더니 계산도 끝나기 전에 포장을 뜯어 입에 물더군요.


방금 삼계탕 한 그릇을 통째로 비운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말이죠. 저는 무심코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습니다.


“젊음이 좋아… 나이 들면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은 것도 없어. 근데 젊을 땐 왜 그렇게 다 후루루 내려가던지… 그때가 좋은 거야.”


딸은 제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오물오물 먹기만 했습니다. 그제야 ‘아차’ 싶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또 꺼내고 말았구나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엄마는 왜 그렇게 빨리 늙고 싶어 해? 아직 그런 나이 아닌데, 왜 그런 말 자꾸 해?”라며 딸에게 핀잔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 말은 짧았지만 제 마음속에 꽤나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변화의 신호들


딸이 삼계탕에 이어 아이스크림까지 단숨에 해치우는 모습을 보며, 저는 젊음의 압도적인 에너지를 실감했습니다.


20~30대의 몸은 마치 잘 조율된 엔진처럼, 섭취한 음식이 빠르게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그렐린 등)도 활발히 분비돼 ‘먹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고, 위장 운동도 활발하니 음식이 말 그대로 ‘후루루’ 내려가는 거죠.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초대사량은 서서히 줄어듭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세 이후로 매 10년마다 기초대사량이 약 2%씩 감소한다고 합니다. 소화 효소의 분비도 줄고 위장 운동은 느려지면서 음식 섭취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합니다.


배가 고프지 않거나, 먹고 싶은 게 없는 날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미식거리는 증상도 잦아지고요. 이런 변화는 단지 식욕 부진만의 문제가 아니라, 때론 만성 피로나 두통 같은 형태로 몸이 보내는 '다른 방식의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듦에 대한 태도


사실 “젊음이 좋아”라는 저의 푸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 안엔 나이 듦에 대한 불편한 감정,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섞여 있었지요.


딸의 반응은, 세대 간 '노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딸에게 ‘늙음’은 아직 멀고 부정적인 이미지지만, 제게는 점점 가까워지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가끔은 위로가 필요한 단어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노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한 사람일수록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늦었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나이 듦의 속도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세월의 선물, 돌봄의 지혜


삼계탕 한 그릇과 아이스크림이 제게 준 깨달음은 분명했습니다.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돌보는 시기라는 것.


✔ 몸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줄어든 식욕과 변화된 소화 능력에 맞춰, 적은 양이라도 영양 밀도가 높은 음식을 섭취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비타민, 단백질, 미네랄이 풍부한 식사를 천천히, 자주.

물 대신 따뜻한 보리차나 메밀차 같은 차를 곁들이면, 수분과 소화를 함께 도울 수 있습니다.


✔ 작은 움직임이라도 꾸준히


가벼운 산책이나 스트레칭은 기초대사량을 유지하고 근육 손실을 줄여줍니다.

무엇보다 운동은 뇌를 자극하고 기분도 전환시켜 줍니다. 젊음을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 활기찬 노년을 살아가기 위한 ‘작은 투자’인 셈이지요.


✔ 말보다 마음으로 전하기


가끔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는 아차 싶은 순간들이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삶의 연륜에서 우러난 조언이기도 합니다.


강요가 아니라,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그 말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삼계탕과 아이스크림은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으로 ‘젊음’과 ‘늙음’을 보여주었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이해의 온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천천히 나이 들어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젊은 날의 생기를 기억하고, 새로운 배움을 향해 나아갑니다.


오늘도 저는 나이 듦을 따뜻하게 끌어안으며,

딸과 함께 닭죽처럼 포근하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채워갑니다.



여러분은 나이 듦을 어떻게 마주하고 계신가요?

혹시 오늘, 식탁 위에서 시간을 느낀 순간이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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