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쑥떡, 사랑이 깃든 한 조각의 기억
해마다 봄이 오면,
어느 순간 문득 코끝을 간질이는 아련한 쑥 내음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그 향기는 단순한 풀 냄새를 넘어, 저의 오래된 기억 한 조각을 조용히 꺼내놓습니다.
바로 ‘엄마의 쑥떡’입니다.
봄날의 풍경, 들녘과 소쿠리와 엄마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봄만 되면 소쿠리 하나 달랑 들고 들로 나가셨습니다.
햇살 좋은 들녘에서 여린 쑥잎을 캐내시던 엄마.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꼬마 시절의 제가 떠오릅니다.
쑥을 캘 때마다 퍼지던 풀 내음, 흙 냄새, 그리고 엄마의 땀냄새까지.
그 모든 것들이 어린 저에겐 작은 소풍 같았습니다.
쑥 한 소쿠리를 가득 채우고 돌아오면,
엄마는 곧장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피셨습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푸릇하게 익어가는 쑥.
그리고 삶은 쑥과 찹쌀밥을 돌절구에 넣고 ‘쿵덕쿵덕’ 찧어내는 소리까지.
그 소리는 봄날의 음악이자, 사랑의 진동이었습니다.
엄마의 손맛, 나의 유일한 봄 간식
힘겹게 찧은 반죽과 한쪽에 푹 찧어 놓았던 고소한 강낭콩을 쑥떡 위에 솔솔 뿌린 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엄마는 한입 크기로 떡을 썰어 주셨습니다.
따끈한 떡을 입안 가득 넣으면, 쫀득한 쑥 향이 퍼지고 그 속에서 톡톡 씹히는 강낭콩의 고소함이 더해져 그야말로 봄이 입 안에서 피어나는 기분이었죠.
그 쑥떡은 과자나 사탕보다 훨씬 귀하고 맛있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간식이었습니다.
봄은 제게 언제나 '쑥떡'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계절이었습니다.
그 쑥떡은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작고 단단한 사랑의 덩어리였습니다.
여전히 봄이면, 엄마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제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 엄마는 예전처럼 가마솥을 끓이고 절구를 찧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봄만 되면 들로 나가십니다.
허리가 쑤신다, 무릎이 아프다 하시면서도
가장 여린 쑥들을 한 소쿠리 캐 오시죠
이제는 방앗간에서 떡을 찧지만,
쑥만큼은 반드시 엄마의 손으로 캐어야 한다는 것이
여전한 원칙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쑥떡은 여전히 우리 가족의 봄 식탁을 채웁니다.
한 조각에 담긴 세월, 그리고 사랑
엄마의 쑥떡은 제게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향기이며, 사랑의 형상입니다.
삶이 바쁘고 복잡해질수록, 그 쑥떡 한 조각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심리학자들은 ‘음식과 기억’의 깊은 연결성에 대해 말합니다.
특정 음식의 향기나 맛은 그 시절의 감정, 풍경, 사람을
한순간에 되살려 줍니다.
저에게 쑥떡은 그 모든 것을 품은 매개체입니다.
엄마의 뒷모습, 절구 찧는 소리, 들녘의 햇살,
그리고 봄날의 공기가 한꺼번에 되살아납니다.
이제는, 제가 엄마의 봄을 이어갑니다
이제는 제가 직접 쑥을 캐어, 엄마께 쑥떡을 해드릴 차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 사라지지 않는 기억,
그리고 봄마다 되살아나는 그 맛.
여러분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으신가요?
한 조각만으로도,
시간과 감정을 뛰어넘어
당신을 품에 안아주는 ‘엄마의 맛’ 말이에요.
당신의 봄은 어떤 향기로 기억되나요?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나쯤은, 그렇게 변치 않는 ‘사랑의 맛’을 간직하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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