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엄마를 닮아가는 어느 날
단출한 한 끼의 시작
아침을 또 건너뛰었습니다.
그저 냉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하루.
점심시간은 이미 한참 지난 두 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는 먹어야 할 것 같아
냉동실에서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습니다.
어제 사 온 상추를 씻어 소쿠리에 담고,
고추장 한 통을 꺼냈습니다.
상추 위에 밥을 조금, 고추장 살짝 얹어 돌돌 말아 한 입.
목이 메었습니다.
찬물 한 잔을 급히 들이켰고,
다시 한 입.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결국
밥의 3분의 1도 채 먹지 못한 채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약을 드시려 억지로 밥을 드시는 엄마
바로 그때,
친정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가끔 식사 시간이 되면
입맛은 전혀 없지만
“약을 먹어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먹어야 해”
하시며 억지로 밥을 입에 넣으십니다.
반찬 없이, 밥을 겨우겨우 삼키며
약을 드시는 엄마.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내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제가 딱 그렇거든요.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너무 안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상추에 밥을 얹고
몇 입 겨우 넘기고는
그만두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엄마처럼요.
짝 맞지 않는 젓가락, 그리고 익숙해지는 것들
문득 식탁을 바라보니
제가 들고 있던 젓가락도 짝이 맞지 않았습니다.
예전엔 그런 엄마를 보며 궁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 역시
그냥 눈에 보이는 젓가락 아무거나 집어 들고 있습니다.
정갈한 밥상을 차리는 것보다
‘일단 뭔가라도 먹는 것’이 더 중요해진 요즘.
그렇게 나도
엄마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나 봅니다.
세월이 데려다주는 이해
엄마가 약을 넘기기 위해 억지로 드시던 그 밥 한 술.
이제는 그 마음이
몸으로 이해됩니다.
식욕은 점점 사라지고,
의무처럼 밥을 준비하고,
억지로라도 씹어보려 애쓰는 나날들.
세월이 이렇게
우리의 삶을 닮게 만드는 걸까요.
그리고 그 덕분에
비로소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엄마의 세월을 따라 걷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과 이해의 깊이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부모님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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