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알종알, 엄마 곁에서 물들던 어린 날의 한가위
가을의 문턱,
온 세상이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는 한가위,
추석이 돌아오면
우리 집 부엌은 그야말로 명절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장작 타는 냄새와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뒤섞여
온 집안을 감돌았고,
엄마의 바쁜 손길은
마법을 부리듯 음식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냈죠.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는 작은 내가 있었습니다.
추석 전날,
엄마는 부엌 한켠 화로에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을 담고,
그 위에 낡았지만 정든 프라이팬을 얹었습니다.
제사상에 올릴 하얗고 얇은 '적'을
하나둘씩 부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죠.
‘적’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흔히 부침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반죽을 올리면
‘지글지글’ 소리가 터져 나오고,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나는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노릇노릇한 적이 익어가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습니다.
엄마의 손은 화로 옆에서만 바빴던 게 아닙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차례상에 올릴 탕과 각종 나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그 아래 뜨거운 아궁이 불을 지피는 역할은
늘 나의 몫이었죠.
붉게 타오르는 장작불에서
따뜻한 기운을 퍼뜨릴 때면,
왠지 모르게
내가 이 명절 준비의 중요한 일원이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나는 아궁이 불을 지피면서도
바쁘게 움직이시는 엄마한테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엄마, 이거 왜 이렇게 해?”
“이 풀은 왜 먹는 거야?”
“적은 왜 부쳐?”
엄마는 힘드셨을 텐데도
한 번도 짜증 내지 않으시고
내 모든 질문에 다정히 답해주셨습니다.
때로는 내 종알거림을 묵묵히 듣고 계시다가
“울 딸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네”
하고 웃으시기도 했죠.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엄마의 고요한 인내와
다정한 시선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화로의 지글거림,
가마솥의 보글거림 속에서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익어가고 있었음을.
그리고 내가 지핀 아궁이 불빛처럼
그 사랑 또한 나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 시절의 부엌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와 내가 함께 호흡하고,
엄마의 지혜와 사랑이
나에게 스며들던
가장 깊고 따뜻한 교감의 시간이었죠.
따뜻한 아궁이 불빛처럼
늘 내 곁에서 잔잔한 온기를 나눠주던 엄마.
쉴 새 없이 물음을 던지는 나에게
다정하게 웃던 그 얼굴.
추석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 시절 엄마의 부엌,
그리고 다정했던 엄마의 마음이
가장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릅니다.
나는 여전히
그 부엌 어귀에서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 나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오늘 바람결이 유난히
그 시절 부엌의 온기를 닮았습니다.
여러분은 추석이나 가족과 함께한 명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엇인가요?
그 소중한 기억들이
때로는 우리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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