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이화경)를 읽고
요즘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작가가 영감을 받은 10명의 여성 작가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 프랑수아즈 사강,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등 정말 매력적인 10명의 여성 작가와 철학가들이 나온다.
가슴 뛰게 사랑하고, 눈에 번갯불이 비치게 치열하고, 뜨거운 숨을 내뱉을 만큼 열정적이었던 그 여성들. 그들의 소개글을 조금씩 읽어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열정을 가지고 인생에 임하고 있는가. 나는 무언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있는가.
사실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재미있는 건 내가 책에서 묘사된 그들의 열정만큼의 열정을 가져본 적도 없어서(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디 비교할 대상도 없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열심히 산다고, 열정적이라고, 뭔가 다르다고 하지만(이 말들을 해 주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이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빈말로 넘기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저 허황된 상태로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살면서 '아, 난 정말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어!' 하면서 만족했을까? 내가 알 길은 없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적어도 그들은 그러려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흔적들을 우리가 보고 있는 거고, 우리는 그 노력의 흔적을 보고 치열하다고, 열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저런 종류의 성찰은 어쩌면 평생 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0이 넘어도 '이제 좀 쓸 만 해 졌는데 80이네'라고 말씀하셨던 피아노 조율사님. 80이 넘었어도 작년보다 금년이 더 나아졌다고 하시던데 그분은 아마 평생 저런 성찰을 하신 분이시겠지. 그리고 그분의 노력을 보고 나는 치열하게 사신다고 생각을 했고. 사실 이쯤 되면 평생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평생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열정은 남성들의 열정에 비해 더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성공한 선배를 동경하는 듯한 느낌.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일까? 그들이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상황은 많이 다른데. 아님 그들이 그 당시에 그만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선 남성들보다 조금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 조금 더 많은 에너지가 내 마음을 두드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