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기억이 머무는 곳

by 감성멘토

어느덧 겨울의 한복판에 이르렀다. 나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대로 차가운 겨울을 즐기기로 다짐하였다. 그 즐거움 중 하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바람이 차가운 날이면, 내 기억은 자연스레 어린 시절 살던 고향의 풍경으로 향하곤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성주였다. 성주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 노란 참외일 것이다. 그 참외의 달콤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땀과 정성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바깥세상은 온통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곤 하였다. 어린 나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들어가 비닐하우스 한편에 앉아,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이웃 어른들이 참외 접붙이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곤 하였다. 손끝으로 작은 호박 대목 위에 여린 참외 모종을 조심스럽게 연결하는 모습, 마치 생명을 이어주는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작은 모종들이 온기를 머금은 흙으로 옮겨 심어지고, 파릇파릇한 기운이 하우스를 채우는 모습은 겨울의 황량함을 잊게 할 만큼 생명력이 넘쳤다. 그 작은 싹들이 나중에 달콤한 참외가 된다는 사실이 어린 내게는 마냥 신기하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푸른 여름이 찾아오면, 고향의 모습은 또 다른 활기로 가득하였다. 쨍한 햇살 아래 참외 밭은 푸르게 물들고, 나는 밭 한가운데 높이 세워진 원두막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원두막 그늘 아래서, 방금 밭에서 따온 시원한 수박을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파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씨를 발라내며 깔깔거리던 웃음소리, 얼굴 가득 묻은 붉은 수박 물자국, 그리고 끈적이는 손으로 장난치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원두막의 정겨운 풍경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향의 기억은 이렇듯 눈에 보이는 풍경과 더불어, 계절마다의 온기, 땀방울, 웃음소리, 그리고 달콤한 맛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겨울의 따뜻함,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는 기쁨 역시 과거의 이러한 소중한 기억들이 바탕이 되는 것일 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어린 왕자의 가르침처럼, 고향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많은 정서와 추억들이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처럼 피어 있고, 때때로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원천이 된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눈에 보이는 고향의 모습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그 시절의 순수와 사랑, 그리고 위로를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내 유년의 추억 또한 그렇게 시공을 넘어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별빛과 같은 존재이다. 이 소중한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안온함을 조용히 감지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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