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

by 황혜림
coffee-2714970_640.jpg



문턱 위 종은 울리지 않았는데, 카페 안에는 이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돌렸다. 창가 자리, 햇빛이 사선으로 스치는 그곳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양손을 무릎에 올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니?” 내 물음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목소리는 분명 또렷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공허가 가득했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무엇을 마시고 싶니?”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는 커피요.” 잔을 준비하던 손이 떨렸다. 이름. 그것은 규칙처럼 묻지 않았던 단어. 그러나 그 소년은 스스로 잃어버린 이름을 찾고자 했다. 커피 향이 번지는 동안, 그는 낡은 수첩을 꺼냈다. 페이지마다 글씨 대신 빈 칸만 가득했다. “이게 다… 제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래요.” 소년은 손끝으로 빈 칸을 가리켰다. “근데 아무리 적어도, 잉크가 번져서 지워져 버려요. 마치 누가 계속 지워버리는 것처럼.” 나는 조용히 잔을 밀어주며 말했다. “이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야.” 소년은 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그 순간, 창가의 사진 속 세 사람 중 한 명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졌다. 웃고 있었지만, 이름 없는 표정이었다. 소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중얼거렸다. “…혹시, 당신이 제 이름을 기억해 줄 수 있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노트 한 귀퉁이에 작게 한 문장을 남겼다.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 단지, 돌아오는 길을 찾을 뿐이다.” 종소리가 울렸다. 소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빈 수첩은 테이블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제, 카페는 단순히 이야기를 기록하는 곳이 아니라, 사라진 이름을 되찾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keyword
이전 02화바리스타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