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의 그림자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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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문턱 위 종은 잠잠했지만, 어딘가에서 발자국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손, 노트를 쥔 손끝, 그리고 내 어깨 너머에 희미하게 드리운 그림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림자는 마치 나의 또 다른 모습 같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림자는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물은 흘러내렸고, 잔 위로 향이 번져갔다. “당신은 누구죠?” 나는 거울 속 그림자에게 물었다. 낯선 목소리가 내 안에서 대답했다. “나는 첫 번째 바리스타의 잔향. 계약을 이어받은 자는 늘 나를 보게 되어 있어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럼, 당신이… 나를 이곳에 묶은 건가요?” 그림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나는 단지 증명일 뿐이죠. 바리스타는 늘 두 사람입니다. 사라진 자와, 이어받은 자.” 나는 손을 뻗었지만, 그림자는 닿지 않았다. 거울 속의 잔은 여전히 향기를 뿜었고, 그 향은 내 잔과 똑같았다. 그 순간, 종소리가 울렸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내 안의 그림자가 문 쪽을 바라보았다. “곧, 진짜 주인이 돌아올 겁니다.”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바리스타의 그림자, 그 존재가 말하는 ‘주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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