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불빛 아래

by 황혜림



비가 그친 뒤, 골목의 공기는 유리처럼 맑았다. 습기를 머금은 벽돌 틈 사이로 네온사인의 빛이 스며들었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번갈아 깜빡이며 골목 끝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날 첫 손님은 유리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네온사인이 반사된 얼굴은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빛이 실내로 스며들었다. “여기… 예전에 술집 아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20년 전, 작은 선술집이었다. 술이 떨어질 때마다 사장이 직접 골목을 뛰어 내려가 병을 사 오곤 했다고 했다. 그는 창가 쪽에 앉았다. 네온 불빛이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여기 불빛, 참 이상하죠. 밤인데… 이상하게 따뜻해요.” 그 말이 내 귀에 오래 남았다. 나는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우유를 부었다. 네온빛이 하얀 거품 위로 번졌다. 그가 컵을 들었을 때 빛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는 몇 모금 마시더니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이 불빛이 창문으로 들어오던 방에서 살았어요. 그땐 불빛이 싫었죠. 밤마다 잠을 깨게 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어 사이마다 오래된 그림자가 묻어 있었다. “그 방에… 누군가 있었어요.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 없지만, 불빛이 창에 비칠 때마다그 사람 그림자가 함께 있었죠. 언제부턴가, 그 그림자가 사라졌어요.”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네온사인이 잠시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빛이 끊어지는 그 찰나, 그의 표정도 잠깐 사라졌다. “그 후로, 이 불빛이 그리워졌어요. 싫어했던 게, 보고 싶은 게 됐죠.” 나는 노트를 펴서 그의 말을 적었다. “네온 불빛은, 사라진 사람의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그가 자리를 떠날 때 창밖 골목은 더 밝아져 있었다. 불빛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유리문 위에서 반짝였다. 그날 밤, 마지막 손님이 나간 뒤 나는 불을 끄고 창가에 앉았다. 네온사인의 빛이 내 손 위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 유리창에 내 그림자 옆으로 또 다른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 불빛 아래 서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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