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편지

by 황혜림



바람이 강한 날이었다. 간판의 낡은 철제 고리가 삐걱이며 울렸다. 골목 바닥엔 누군가 흘린 봉투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날은 손님이 없었다. 열한 시가 넘도록 종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봉투를 주워 카운터 한쪽에 올려뒀다. 주소도 이름도 없었다. 대신, 겉면에 펜으로 짧게 적힌 문장이 있었다. “전하지 못한 편지를 보관해 주세요.”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문이 열렸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보따리 위에는 빗방울이 둥글게 맺혀 있었다. “커피, 진하게… 그냥, 진하게 주세요.” 나는 포터필터에 원두를 눌러 담았다. 추출이 시작되자 짙은 갈색의 향이 퍼졌다. 그녀는 잔이 나오기도 전에 보따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노란색 편지 봉투였다.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종이 냄새가 오래됐다. “이 편지를… 보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봉투를 받았다. 두께로 보아, 한 장이 아니었다. “왜 여기인가요?” “여긴… 잃어버리지 않잖아요.”

그녀의 눈이 잔을 향했다. 손끝이 잔 받침대를 살짝 만졌다. “아들이 있었어요. 군대 가기 전에 편지를 썼는데,

제가 그걸… 못 줬어요. 그냥, 바쁘게 살다 보니 시기를 놓쳤어요. 그 다음엔… 못 준 게 아니라, 못 주게 됐죠.”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에 닿자 잠깐 눈을 감았다. “그 애가 좋아하던 건 믹스커피였어요. 근데 전, 늘 진하게만 마셨죠. 이제 와서야, 그 애 입맛을 따라주고 싶은데… 없네요.” 나는 노트를 펴서 날짜와 잔 모양을 적었다. 그리고 ‘전하지 못한 편지’라고 썼다. 그녀는 봉투를 내 쪽으로 밀며 작게 덧붙였다. “혹시… 여길 찾으면 전해 주세요. 못 찾아도, 그냥 여기 두세요. 이게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놓이니까.” 나는 봉투를 카운터 아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었다.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게 작은 상자 안에 뉘였다.

그녀는 잔을 비우지 않았다. 절반이 남아 있었다. “마시다 보면, 쓴맛이 덜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그녀가 일어서자 보따리는 더 가벼워 보였다. 문이 열리고 바람이 봉투를 스쳤다. 종이 울렸다가 길게 떨렸다. 다음 날, 우편함에 작은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전날의 편지보다 더 오래된 듯한 종이 냄새가 났다. 겉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커피 향이, 쓴맛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서랍 속 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상자 안의 편지는 그대로, 그 위에 새 편지가 포개졌다. 보내지 못한 말과

이미 닿은 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커피 향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날 이후, 서랍을 열 때마다 그 향이 먼저 손끝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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