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로 산책을 갈 때면 자주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매번 나에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도 포포랑 둘이 산책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맞은편에서 자전거 한 대가 오더니 이내 할아버지가 내리시고 우리 포포를 엄청 반갑게 맞아 주셨다. 포포도 두 발로 서서 할아버지 몸에 바짝 기대어 혀를 날름날름 내밀며 뽀뽀하는 기세를 보니 둘이 꽤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남편에게서 바닷가 근처에 말 못 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사시는데 우리 포포를 엄청 예뻐해 주신다고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그 후 며칠 뒤 바닷가 주변 마을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 쳐다보니 어느 집에서 할아버지께서 반가운 얼굴을 내밀고 계셨다.
포포가 후다닥 달려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허리에 맨 줄에 이끌려 나도 할아버지 집 앞마당으로 끌려 들어갔다. 포포는 연신 꼬리를 흔들며 할아버지 품에 앞발을 내밀었고 할아버지는 허허허 웃으시며 마냥 포포를 예뻐해 주셨다.
스윽 주변을 둘러보니 툇마루 안으로 문이 조금 열린 틈 사이로 개 한 마리가 짖고 있었고, 그 뒤로 무슨 일인지 슬쩍 내다보다 안으로 들어가시는 할머니의 실루엣이 보였다.
볕이 좋은 앞마당에 자리 잡고 누워있던 검정고양이 한 마리도 우리가 와서 불편한지 자리를 피했다.
할아버지는 허허허 웃으시며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뜻을 연신 손동작으로 설명해 주셨다.
‘멍멍이는 짖기는 해도 물지는 않는다. 고양이도 다섯 마리를 키우는데 새들을 물어서 사냥을 한다.’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건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바닷가로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뭉클하였다. 할아버지는 분명 내가 만난 어른 중에서 가장 해맑은 웃음소리와 행복한 미소를 가진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하물며 천리안도 가지셨다. 우리 집에서 염전해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밭을 사이로 난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지나야 하는데, 그중 하나는 할아버지 집을 지나는 길과, 다른 하나는 은어다리가 나오는 길이고 두 길 사이는 500미터는 족히 되는 꽤 먼 거리였다.
한여름에는 할아버지 집 맞은편 은어다리 쪽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산책을 시작하였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멀리서 “어어” 하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면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흔들리는 팔의 형체와 함께 인사를 건네곤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능력에 또 한 번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나랑 아이랑 포포랑 셋이서 산책을 하러 간 날이었다.
할아버지 집을 지나서 염전해변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으셨고 어깨에는 그물을 메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시고는 파도가 제법 거센 날인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성큼성큼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이내 넘실대는 파도에 박자를 맞춰 몸을 몇 번 움직이시고는 그물을 내던지셨다.
순간 할아버지의 팔에 묵직함이 느껴지셨는지 나를 보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셨고, 그물을 거둬들여 우리 앞으로 돌아오실 때는 그 위세가 위풍당당하였다.
신기한 구경을 한 우리도 연신 “우와”하며 감탄하였고, 신이 난 할아버지는 양동이에 물을 퍼담아 그물에서 퍼덕거리는 물고기 세 마리를 집어 담으셨다.
할아버지에게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의 위엄이 느껴졌다.
‘물고기 배를 갈라서 포를 떠서 초장에 콕 찍어 먹으면 진짜 맛있다’는 것을 손짓으로 몇 번이고 얘기하셨다. 그 뒤 몇 번 더 그물을 펼치셨지만 파도가 거세어 물고기를 더는 잡지는 못하셨다.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고르시며 바다를 보는 눈빛에서 그간 할아버지의 삶이 느껴졌다.
거센 파도의 물살이 수십, 수백 번 더 할아버지의 삶을 덮쳤을 테지만 할아버지는 그 파도를 매 고비마다 무사히 넘기셨을 것이고, 그 결과 지금 이렇게 거친 파도에 맞서 고기 잡는 법을 익히셨으리라.
그리고 그 힘든 파도를 견뎌내느라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누구보다 해맑고 순수한 웃음을 가지신 할아버지를 만날 때면,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삶의 숭고한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