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내 사랑 1번과 2번이 살고 있다. 1번은 당연히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우리 집 똥강아지 동동이고, 2번은 내가 낳지 않고서도 우리 집 자식이 된 진짜 강아지 포포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포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지만 내가 처음부터 개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아니, 개와의 첫 만남은 악연이었다.
엄마의 말로는 내가 다섯 살 때 우리 집에도 마당에서 개를 잠깐 키운 적이 있었는데 그 개가 이유 없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곤 커서도 잊을만하면 엄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호랑이띠는 개와 상극이다”라는 말이었다. 이 명제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비로소 큰 트라우마와 함께 내 뇌리에 강하게 꽂히게 되었는데 이웃집 아줌마가 자기 개를 잠깐만 맡아달라고 해서 우리 집에 조그만 요크셔테리어가 오게 된 이후부터였다.
눈도 땡글하고 몸집도 작아서 귀여웠던 그 강아지가 어느 순간 돌변해서 나만 보면 왕왕 짖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나와 상극인 오빠는 나의 약점을 잡았다 싶었는지 재미 삼아 “물어”하면서 자주 개에게 사주하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울면서 그 조그만 개를 피해 온 집안을 도망 다녀야만 했다. 결국 나의 강한 반대로 그 개가 다른 집으로 가게 되면서 개와의 짧았던 동거는 끝이 나게 되었고, ‘호랑이띠는 개와 상극이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평생 나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 다짐하며 살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개만 보면 왠지 모를 두려움에 슬슬 피하게 되었고, 개에게 애정을 쏟으며 사는 사람들이 인간에게 써도 부족한 돈과 애정을 낭비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생각해 못마땅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철 같던 나의 선입견에도 조금의 틈이 생긴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회사 후배가 가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개들은 시끄럽게 짖고 물려고 해서 예의가 없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가을이는 짖지도 않고 세상 순수한 표정으로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며 주인에게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세상 점잖고 착한 개였다.
나는 ‘이런 개도 세상에 있구나’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날 이후로 동동이는 “우리도 개를 키우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나의 굳은 심지도 조금은 풀어져서 ‘가을이 같은 개는 키울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덧 “그래. 동생을 안 낳게 되면 개를 키우자”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생은 잠깐 생각만 왔다가 다시 그 생각조차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서, 결국엔 내가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 어느덧 개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 천천히 알아보자.” 내뱉은 내 말 한마디에 날개를 달아 일주일 만에 나를 견주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다름이 아닌 바로 남편이었다. 지나고 나서 깨달은 건데 동동이가 잊을만하면 남편이 “동동아, 개 키우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하며 애 마음에 주기적으로 기름을 들이부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개와 트라우마가 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지지리 가난한 집에서도 동물애호가였던 아버님이 꾸준히 개를 데리고 오신 바람에 어린 시절을 늘 개와 함께 지냈다고 하니, 모르긴 몰라도 그 유전자 속에 동물과 함께 살고 싶은 유전자가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조용했던 남편이 어느새 “나는 이왕이면 똑똑한 개를 키우고 싶다.”라고 하면서 보더콜리 가정견 분양을 알아보았고 가장 빠르게 분양가능한 곳이 남해에 있었는데, 급기야 분양비를 냉큼 선납 후 나에게 통보해 버리는 바람에 그 주 주말에 새벽 4시에 울진에서 출발하여 남해까지 왕복 10시간이 걸리면서까지 기어코 우리 집에 강아지 발 도장을 찍게 하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로 내 삶에도 원치 않게 강아지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