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 포포 2
내가 애견인이 된 사연
남편이 기어코 남해까지 내려가서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남편이랑 동동이가 10시간의 대장정을 떠났던 날, 나는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며 “개는 개다. 절대 집 안에서 키우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내걸며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나의 강한 의지로 2개월 밖에 안된 새끼 강아지 포포는 첫날에는 집안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었지만, 다음날 거실까지만 가능으로 바뀌게 되었고, 지금처럼 동동이 침대에서 안방에 다 같이 모여 자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실 포포가 집에 오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남편의 행동이었다. 맨날 퇴근만 하면 피곤하다며 바닷가에서 떠내려온 미역 마냥 침대에 널브러져 잠만 자던 사람이 포포를 산책시킨다는 이유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고 그 굳게 다물고 있던 입가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눈이 떠져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는데 남편이 그 작은 강아지를 붙들고 뽀뽀하며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모습을 대면했을 때, 9년 동안 함께 산 세월이 무색할 만큼 강한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주인의 무한한 사랑을 등에 업고 의기양양해진 털뭉치는 나와 동동이를 자기 아래 서열로 보는지 우리만 보면 짖고 깨물기 일쑤였고, 안 그래도 미워죽겠는데 이놈의 개는 또 이갈이가 한창인지 집에 있는 물건은 가리지 않고 물고 뜯고 맛보며 파괴시키는 바람에 내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그럴 때면 더 미워져서 급기야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서 낳아온 아이와 한집에서 살고 있는 기분마저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 개 없이 살던 우리 집이 그리워질 만큼, 영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던 우리의 관계도 어느 사건을 계기로 급반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부고 소식에 충격을 받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는데 그때 포포가 갑자기 달려와서 나를 마구 핥았다. 차를 타고 친정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려 어깨를 들썩였는데 뒷자리에 있던 녀석이 갑자기 앞자리로 건너와 내 무릎에 턱 하니 앉아버렸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의 털뭉치를 껴안고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따듯함이 내 몸을 에워싸서 나를 강하게 안아주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삼일장을 치르면서 포포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애견호텔 생활을 하게 되었고, 3일 후 다시 상봉했을 때 우리의 관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알아주는 유일한 가족인 포포와 붙어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나게 되었고, 얼마 후 포포가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생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함께 한지 1년이 된 포리는 몸무게가 이십 킬로나 나가는 중 대형견이 되었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할 때도 나의 보디가드가 생겨서 참 든든한데, “그 똑똑한 개 맞죠? 참 예쁘게 생겼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괜히 어깨가 으쓱으쓱 해진다.
포포를 만나고 나서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 맨발로 온 동네 먼지를 다 묻히고 와도 우리 집 강아지 발은 절대 더럽지 않다.
- 바다는 눈으로만 담는 것이 아니라 파도와 함께 노는 곳이다. 해변에서 모래사장을 걸으며 파도와 술래잡기하는 재미가 생겼다.
- 축구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놀이인 줄 알았는데 개랑 함께하면 더 재미있다.
- 동물과의 교감은 참으로 엄청나다. 죽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전 세계에 모든 견주들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 가족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살고 싶어 지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될지 포포와 함께하는 삶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