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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사 Jul 23. 2021

권태와 새로움 그 경계


참 유별난 권태를 반복하고 있다. 종종 우리는 인생이, 사랑이, 일이, 또 스스로가 감당이 안될 때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복잡한 생각을 놔버린다. 코로나로 삶에 대한 권태가 극에 달한 지금, 이 초라한 감정의 끝점과 시작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된 작은 이야기를 이곳에 적어보려 한다.


 최근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당황한 적이 있다. 작가의 직업은 예체능계열 프리랜서이다. 주로 하는 일은 트레이닝인데 이 과정에서 나는 매일 일정한 장소에서 일과를 소화하는 것이 아닌 스케줄을 매주 짜고, 수업을 진행한다. 고로 매주 수업 스케줄이 변동되고 가야 하는 장소가 바뀌는 아주 변화무쌍한 하루하루가 계속되는 편이다.


주로 하루에 이동이 2-3회 있는 경우가 많고 늘 이동을 할 때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때에 내가 가진 습관 중 하나는 다음 수업을 간단하게라도 준비하는 것이다. 수업 진도나 수업 내용, 숙제 확인 등등을 생각해놓고 대충이라도 머릿속에 그려놓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수업 속도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습관을 가진 지 어연 2년이 넘었다.


다만 요즘 온 삶이 무기력해지기 시작하고 나서, 3주 동안 한 번도 이동할 때에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스스로 이렇게 간단하게 습관을 깨버린 것을 1주일 넘게 준비를 하지 않고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수업 내용을 체킹 할 시간에 sns를 하였고, 유튜브 인기 동영상을 보았다. 간단한 유희로 시간을 때웠다는 생각에 초반에는 나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이없지만 3주나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내 수업은 흘러갔으며, 아무 탈 없이 진도를 나갔다.


이러한 권태로 인해 얻은 생각은 ‘내가 발버둥 치던, 힘을 줘서 버티던 모든 일들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또한 ‘그 불편한 긴장과 압박이 내 발을 묶었을 수도 있겠구나.’이다. 내가 강박을 느낄 정도로 준비했던 일들을 하지 않음에도 내 세상은 제자리를 찾아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초라한 권태 속에도 나는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이 권태라는 무료함과 불안감 속을 살아봤을 것이다. 다만 그럴 때에는 힘을 쫙 빼보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뼈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축 늘어져도 보고, 누워서 하루 종일 시체놀이를 해도 좋다. 신나는 일도 반복되면 지루해지듯, 좋아하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물리듯, 우리 인생에서는 가끔 권태라는 이름의 새로움이 필요하다. 권태는 새로움의 반의어이자 유의어가 될 것이다. 어쩌면 반대편에 있는 것 같은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위한 감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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