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의 끝을 향해 가던 그 해 겨울.. 코로나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 전, 나는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수업 준비를 하다 문득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대외적으로는 내게 온 아이들을 좀 더 즐겁게, 잘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고, 궁긍적으로는 '내 아이'를 잘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름도 거창한 '딩크족'은 아니었다. 한 명은 낳아야지.. 낳을 거야..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정확한 때를 정하지는 않은 채 나중에.. 내년에.. 하며 미루다 내가 학원을 차렸고, '학원'이라는 핑계가 생겼기에 이번엔, 학원 안정시키고.. 그러다 또 내년에.. 를 반복하며 서른아홉이 되었다.
그 해가 거의 다 끝나가는 겨울쯤 든 생각이었기에 내년 봄 학기를 준비하기엔 이미 늦었고, 가을 학기 입학을 목표로 대학원 준비를 해보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 천천히 학원 수업도 줄이고 아이도 계획하자.. 남편과의 의논도 마쳤다. 그 무렵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터졌다.
우리 모두가 그랬듯 나 또한 금방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소독약과 마스크에 의지하며 잘 참고 살고 있던 찰나 암선고를 받았고, 코로나에 걸렸으며, 격리 시설에 다녀오면서 나는 이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암선고를 받자마자.. 코로나 확진을 받자마자.. 격리시설에 도착하자마자.. 힘든 순간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가 없어 다행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울었을까..
아픈 엄마라 미안하다고.. 혹여나 아픈 유전자를 남겨준 건 아닐까 있지도 않은 유전병을 걱정하고, 나 때문에 코로나에 걸려 고생했을지도 모를 아이의 기침 소리에 얼마나 마음 졸이며 그 시간을 견뎠을까..
수만 가지 생각 끝에 내린 내 결정에 남편도 동의해 줬고, 나는 그렇게 '딩크족'이 되었다.
2021년 가을..
혼란스럽던 날들의 끝에,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딱히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이전에 학원을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처럼 아이들이 싫어지거나 미워진 것도 아닌데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학원은 당시 '집합금지명령'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에서 한 달 내내 수업을 못하게 하기도 했고, 수업이 가능한 달에는 한 달에도 몇 번씩 교육청, 시청, 동사무소 직원들이 아무 때나 들이닥쳐 아이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와 여분의 소독약과 마스크가 있는지.. 환기는 몇 번씩이나 하고, 아이들의 체온은 몇 도인지 작성하게 한 장부(?)를 확인했다.
문득 두려워졌다.
내가 수업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0, 아니 마이너스가 되어버리는 학원의 수익구조와 아무리 조심해도 또다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겨버릴지 모른다는 대면 수업의 한계.
언제고 또다시 반복될지 모르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자 문제점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올랐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새롭게 도전해 보자, 실패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자 하는 원인 모를 용기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렇게 나는 일 년의 긴 이별준비와 사업준비를 병행하며 2023년 1월 31일. 학원을 폐업했다.
아이들과의 약속(대학까지 책임진다는)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이별을 어느 날 갑자기 전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백일 전쯤에 '우리의 이별'을 미리 공지했다. 이별은 늘 아프고 힘들지만 아이들은 더 열심히 공부해 줬고 그렇게 마지막날까지 울다 웃으며 모두가 온 마음을 다해 축복과 사랑을 전했다.
수업 후 매일 두세 명의 학부모님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매일매일 울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 와중에도 앞으로 옮겨야 할 아이들의 다음 스텝이 어디가 좋을지 미리 조사해 놓은 근처 어학원/일반학원/과외/공부방/교습소 등 다양한 선택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오지랖일 수도 있고, 극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아이들의 선생님으로서의 내 몫을 해내고 싶었고, 단정하게 매듭짓고 싶었다. 언제고 만날 수 있고, 만나고 싶은 좋은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만약 그때 아프지 않았었다면,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삶의 답은 없으니까..
후회해도 바뀌지 않는 게 인생이란 걸 알기에 지금 나는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반성하고 다음에는 더 좋은 결정을,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길 기도한다.
다만..
아픈 내가 싫었을 뿐인데 괜히 '마흔'이라 그렇다고, 빨리 지나가버리라고 이유 없이 미워한 나의 '마흔'에 미안할 뿐..
(다시 오지 않을 나의 '마흔'을.. 참 예뻤던 나의 '마흔'을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을 나에게 전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저 나로 잘~~ 살고 있다.
내가 한 수많은 선택이 모여 이룬 오늘이므로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내 탓이요~~ 하며^^
부디 이 시간..
아프지 마시고, 행복만 하시길..
혹시 아프시더라도 금세 회복하시길..!
미리미리 건강검진도 잘 받으시길..!!
하루 한 번은 나를 위해 몸에 좋은 걸 드셔주시길..!!!
나를 더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길.....
온 마음으로 모두의 삶을 응원합니다~~
* "오늘도 그저 나로 살아갑니다"로 기록한 내용들은 제가 2021년 봄, 갑작스러운 암진단을 받고 치료 중 코로나를 겪으며 보냈던 조금은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저의 이야기입니다.
대단할 거 없는 제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 모두모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 11월부터 "어학원 원장으로 살기(안정&탄탄) VS 스몰브랜드 대표로 살기(불안불안&난리난리)"의 연재를시작해보려 합니다. 작은 브랜드 대표로 산지 이제 1년 차.. 매일이 좌충우돌 시끌벅적 초보 대표의 일상을 가감 없이 남겨볼게요~~한달만 쉬고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