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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Sep 05. 2024

너 정말 괜찮아?

괜찮은 척 금지.

격리시설에서 나왔지만 완벽한 일상으로의 회복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 내 컨디션을 확인하는 엄마에게는 괜찮다, 괜찮아지고 있다.. 말했지만 평소와는 분명 달랐다. 조금 무기력했고, 쉽게 피로해졌으며 뭔지 모를 나른함이 한동안 지속됐다. 코로나 후유증인 건지, 이제와 수술 후유증이 느껴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체력이 떨어진 건

분명했다.

무작정 집 앞 산책로를 참 많이도 걸었다.

'브레인포그'가 걱정돼 영단어 암기 어플을 결제하고 매일 몇백개의 단어를 확인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혹시 모를 후유증에 지레 겁을 먹고 나를 들들

볶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매일 하게 된 질문..


너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격리시설에서 보낸 열흘동안 나는 매일, 증상이 생기거나 혹은 바뀔 때마다 다이어리를 펼쳐 기록을 남겼다.

그때는 그저 내 증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궁금해서 시작한 '나에게 묻기'였는데 지금은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에게 질문을 자주 한다.

-컨디션은 어때?

-안 피곤해?

-아랫배가 조금 뭉친 느낌이야.

-잠을 좀 더 자는 게 좋겠는데?

.

.

.

그러곤 내 몸이 해주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컨디션이 떨어진 건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일이 영향을 미친 건지..

예를 들어 갑자기 머리가 아플 때 예전 같았으면 머리가 아프네? 두통약이 어딨지?? 였다면 지금은..

잠깐이라도 나에게 물어본다. 요즘 신경 쓰는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요 며칠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제때 잘 챙겨 먹었는지.. 그렇게 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약을 먹지 않아도 어느새 통증이 가라앉고 마음도 잠잠해짐이 느껴진다. 코로나는 내게 나와 이야기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일상으로의 회복이 더디다 생각돼 또다시 억울해지고, 그토록 신경 쓰고 예민하게 굴었던 내가 왜 걸렸는지.. 대체 왜 나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영영 답이 없을 것 같던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그 해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알게 됐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시작될 무렵 가르치던 아이들이.. 아이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인들이 하나둘씩 코로나에 걸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놀라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얼마나 지나면 괜찮아지는지.. 격리시설은 어땠는지.. 열흘만 지나면 정말 모든 통증이 사라지는지 직접 겪은 나는 다 설명해 줄 수 있었으니까..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그들에게 위안이 된다는 걸..


코로나로 참 힘들었다.

살아오며 이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힘들었던 날들이 분명 훨씬 많았을 텐데 그날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괴롭기만 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쁘기만 한 일은 없는 법.

코로나로 나는 다른 사람을 좀 더 깊이 위로할 수 있는 무기 하나를 장착했고, 누구보다 나와 친해졌다.

흐릿하고 애매모호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분명하게 알고 싶지는 않았던 내 마음의 실체를 마주할 용기도 생겼다.


이제 그 용기로 나랑 조금 더 친해져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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