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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Sep 12. 2024

멈춰볼까?

잠시 쉬어 가는 것도 괜찮아.

암 수술을 받고 삶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달라졌다.

몸에 이상은 없는지, 재발이나 전이(이런 단어를 쓰니 갑자기 무서워지긴 하지만..)는 없는지 검사를 하기 위해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간다.

채혈을 하고 CT검사를 위해 두꺼운 바늘을 꽂고 대기실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는 일은 아무거나 먹고 규칙이나 루틴 없이 살던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맞다, 이번달 검사지?'

괜찮다가도 달력을 넘겨 검사가 있는 날을 마주하게 되면 마음 한켠에 숨어 있던 걱정과 두려움이 갑자기 몸집을 불린다.

'괜찮아, 괜찮지 뭐..'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신경은 쓰이는지 급하게 몸에 좋다는 걸 챙겨 먹고 몸 구석구석을 찬찬히 느껴본다.

'여기도 괜찮고, 여기도 괜찮고...'


'암'은 안 그래도 까다로운 나를 한층 더 까탈스럽게 만들었고, 내가 조금 불편하고 말자.. 했던 마음도 조금 이기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내 몸에 무리가 된다 싶은 부탁은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하고 말자.. 했던 일들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솔직하게 못하겠다,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나로 바꾸어 놓았다.


그 무렵.. 아프기 전까지 당연했던 일들이 조금씩 버거워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다. 누군가는 그저 수업만 잘해주면 될 일 아니냐 말할 테지만, 내가 뭐라고 진심을 다해 "선생님~~" 하며 속마음을 꺼내 보이는 아이들에게 내 마음 한켠 내어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저 돈을 받고 시험을 잘 보게 해주는 선생님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대나무 숲이 되어 주고 싶었고, 크면서 꼭 필요한 좋은 어른 한 명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게 왔던 모든 아이들을 모두 같은 크기의 마음으로 사랑해주진 못했지만 같은 밀도의 사랑이었던 건 단언할 수 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줬을 뿐인데도 고맙게도 아이들은 나를 잘 따라줬다. 아무 연락도 없이 늦는다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나의 진심이 아이들에게 닿았고 아이들의 진심도 나에게 닿아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만났지만 우린 친구처럼, 가족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공유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좋을 수만은 없는 일.


좋을 줄로만 알았던 아이들과의 친밀감은 의외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학부모들의 전화와 방문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진 것이다. 대부분 나에게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맡겨준 분들이셨기 때문에 학원 스케줄을 거의 다 알고 계셨고 학원이 아파트 상가에 위치하고 있던 터라 강아지 산책시키며, 편의점에 왔다가, 볼일 보고 들어가는 길에, 학원불이 켜져서 인사하려고.. 각자의 이유로 잠깐 들렀다고 오시는 분들이 매주 조금씩 늘어났다.

 "제 말은 죽어라 안 들으면서 영어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다고 금방 달라지네요."

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오전, 늦은 밤, 주말 할 거 없이 카톡과 전화가 이어졌고, 학원은 수업이 아닌 학부모들의 상담으로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선생님~ 수업 끝나면 전화 부탁드려요."

"선생님~ 00이 때문에 의논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언제쯤 찾아뵐까요?"

라는 문자가 도착하면 한숨부터 나왔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시계를 체크했다. 늘 '딱 20분만 상담해야지!!' 마음먹지만 30분은 우습고 어느 날 밤은 세 시간도 넘어갔다.


이제와 학원을 정리한 이유가 모두 그분들 탓이라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내가 너무 많은 역할을 자처한 탓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시간들은 당시의 나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기 충분했고, 아무리 열심히 듣고 고심 끝에 솔루션을 제시해도 결국은 자기 자식이 제일 소중하다는, 그러니 선생님도 그렇게 대해주시면 좋겠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대부분의 부모들 덕분(?)에 무기력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혼자만의 고민이 많아졌다.

마인드맵, 도표, +/-, 등.. 혼자 쓰고 지우고, 그리고 덧칠하기를 반복하는 시간을 보내며 나에게 질문했다.


'지금 행복해?'

'지금의 삶이 네가 그리던 모습이야?'

'어떻게 살고 싶어?'

'10년 후의 너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

.

.



STOP



멈추고 싶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내 결론..

그러니 멈춰야겠다.









이미지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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